인류 역사는 ‘□’의 역사이다.
박정희를 존경한다던 파키스탄 무샤라프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반정부인사를 체포하고 부토를 가택 연금한다. 이 소식을 전하는 텔레비전 모니터 위로 그렇게 무겁던 거대담론이 얄궂게도 개그 프로의 퀴즈처럼 떠오른다. 연이어 빛바랜 흑백 필름을 타고 최루탄과 물대포 등이 난무하는 로터리에서 후미진 골목으로 쫓겨 가던 가두 시위대 군중이 오버랩된다. 그들의 이마에는 천형처럼 아로 새겨진 글자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념 서클, 교회, 노동현장 등을 누비며 누에처럼 토해낸 명주실로 ‘계급투쟁’이라고 꼼꼼하게 박아 넣었다.
이어 오일쇼크를 모면하려는 동서진영의 데탕트 무드 속에서 유신 겨울공화국의 칼바람이 몰아치고 그 거대한 뇌관 광주가 터진다. 요술처럼 신군부가 똬리를 틀던 어느날 노동쟁의를 조직하다 수배된 한 젊은이가 불고지죄를 강요하며 도바리로 흘러 들어온다. 그는 어깨에 여전히 낡은 계급투쟁의 견장을 달고 날마다 부지런히 어딘가를 쏘다니다 덜컥 잡혀 들어가 한 1년 콩밥을 먹고 다시 돌아온다.
그날 그는 사뭇 달라진 사상의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대뜸 무슨 정교한 이론이 필요하냐며, 무조건 감방 문을 발로 걷어차고 쟁취한 눈부신 ‘실천’행위의 전리품을 자랑스럽게 내놓는다. 그들은 미심쩍은 손으로 그걸 나눠가지며 그날 밤을 꼬박 새운다. 그의 그런 영웅적 투쟁 뒤에는 인류 역사가 ‘인간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확대’의 역사라는 새로운 금과옥조의 ‘시대정신’이 모범답안처럼 금박돼 있다. ‘강철서신’의 유려하고 원숙한 문체는 먹물의 강단을 비웃으며 실천 공간을 샅샅이 누빈다.
어느새 꿈결처럼 페레스트로이카와 그라스노스치 등과 함께 문민정부가 들판의 살얼음을 녹인다. 그 위를 전설처럼 국제금융자본에 의한 무자비한 구제금융의 홍역이 지나간다. 이제 이 땅에도 황금의 가치가 권력의 그림자를 뚫고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다. 적색 일색의 깃발들은 서서히 고개를 숙이고 분홍색을 거쳐 이내 녹색으로 얼굴을 바꿔 나간다.
이제 식자가 평화로운 식물성으로 물이 드느냐, 야수 같은 동물성으로 남을 것이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어리석은 질문이 되어간다. 이렇게 식자 사이에 환경이, 생태가, 생명이, 상생이 난무하는데 비례해 패권에 의한 무한경쟁의 정글도 함께 더욱 깊어간다.
이 사태를 어찌하랴? 우선 눈에 보이는 객관적 특수상황으로서의 살벌한 계급투쟁과 심각한 혁명 등을 좀 더 차분하게 생존의 문제로 가라앉힐 필요가 떠오른다. 착취와 수탈이란 기생자의 입장과 기여라는 숙주의 입장을 하나로 묶는 기생, 더부살이라는 개념이 벼려진다.
다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주관적 보편상황의 모델로서 모든 식물의 다양성과 조화의 표현인 상생, 서로 살기의 완벽한 실현체, 극상림의 존재 등이 모색된다. 일부 녹색주의자의 타락, 맥 빠짐의 예외도 인정된다. 마침내 식물성이 무위의 자연적 결정에 갇히지 않고 동물성보다 더 치열한 구도를 지향한다는 확신이 선다.
또 다시 길 떠날 채비를 하며 이제 어깨를 잠시 내려놓는다. ‘더부살이와 서로 살기’의 간이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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