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대선별곡(新 大選別曲)

자유민주주의는 인류의 기원이래 가장 이상적인 정치제도며, 선거는 민주주의 구현의 기본 수단이다. 이렇긴 하나, 민주주의 목표가치에 비해 미흡한 선거가치의 모순에 갈등을 지울 수 없을 때가 있다.

지방의원, 자치단체장, 국회의원 등을 예로 든다. 선거가 끝나면 이들은 선거구민의 상전이 된다. 지방행사마다엔 으레 지방의원 위주의 인사소개가 없으면 행사가 진행 안 된다. 기초단체장은 ‘소통령’으로 군림하다가 비리로 가막소 가기 일쑤고, 광역단체장은 대통령 흉내를 내는 ‘중통령’ 행세가 예사다. 국회의원들은 전형적인 정치 건달꾼이면서도 위세가 대단하다. 민선의 이들 벼슬아치가 선거구민에게 아양 떠는 겉모습은 건성일 뿐, 속마음은 건방만 들어 있다. 대체로 건방떠는 위인이 일을 제대로 하는 걸 볼 수 없다.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표를 구걸하는 후보들 모습이 가지가지다. 길거리서 음식을 사먹으며 나발을 불어대는가 하면, 기생 오라비처럼 길가는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덮어놓고 껴앉는가 하면, 생전 안 가던 영세민층을 찾아 잘 살게 해줄 것처럼 허풍떠는 꼬락서니들이 가관이다.

이들이, 이들 가운데 그 누구든 대통령에 뽑히고 나면 청와대에 들어가고 나면, 태도가 달라져 민초위에 군림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것이다. 일다운 일을 위한 소신적 권위가 아니고 위세를 위한 독선적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일수록, 공·사 구별을 못하고 민생에 고민할 줄 모르고 딴나라에 국위를 못미치는 독불장군이 될 터인데, 이런 당선자가 나올까봐 두렵다.

따지고 보면 왕권정치나 독재정치나 민주정치나 다 국가 구조가 피지배계층과 지배계층으로 구분되는 건, 인간은 둘 이상만 모이면 우두머리 출현이 불가피한 사회적(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수단인 선거 역시 이래서 지배계층의 선출이고, 대통령 선거는 최고 지배자의 선출인 것이다. J 애덤즈는 미국의 여류사회사업가로 193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이다. 그가 말한 ‘연례적 선거가 끝나면 노예제도가 다시 시작된다’고한 경구는 선거의 취약점을 일깨우는 것으로 특히 대통령 선거에서 곱씹어볼만 하다.

레닌은 그랬다. 국가와 혁명론에서 ‘국가가 있는한 자유는 없다. 자유가 있을 때는 국가가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인류사회의 지배계급 타파를 위해선 국가가 없어져야 하고, 능력에 의해 기여하고 수요에 의해 공급되는 완전한 공산주의의 무정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 필요한 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사회주의라고 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닌 ‘붉은 귀족’의 출현은 부르주아보다 폐악이 심하다 못해 소련은 붕괴되고, 중국 베트남 쿠바는 개혁 개방으로 가는 가운데, 북녘은 김일성주의에서 김정일주의로 거듭 수정하는 사회주의의 변질을 가져왔다.

JF케네디는 연두교서에서 ‘국가는 시민의 하인이지, 시민의 주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가 구성은 인류생활에서 불가피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최상의 국체인 것이 역사적 경험이고 보면 선거는 비록 갈등을 지닌다 해도 절대적 요체다. 그런데 이 선거가 간단치 않다. ‘가장 고약한 풍습은 벼슬하겠다고 선거운동하고 다투는 일이다’’(키케로), ‘선거는 진흙탕 목욕이다’(GB쇼)란 말 그대로 대통령선거판이 아귀다툼이다.

관자(管子)는 ‘先爭天下者 必先爭人’(선쟁천하자 필선쟁인)이라고 했다. 천하의 패권을 쟁취코자 하면 반드시 누가 민심을 얻느냐를 다퉈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자(孔子)는 ‘政者正也’(정자정야)라고 했다. 정치란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란 뜻이다.

대통령을 잘못뽑아 우매한 대통령 밑에서 5년을 참고 견디는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국민사회가 먼저 우매하지 않아야 한다. 국민들이 금융권에 진 가계빚이 지난 3개월 사이만도 14조원 이상 늘어 610조6천438억원으로 가구당 3천819만원에 이른다. 나라빚은 지난해 말만 해도 내년 정부 예산안과 맞먹는 248조원이던 것이 올해 280조원으로, 연간 국가채무 이자가 12조원인 가운데 내년 말엔 300조원을 넘어선다.

나라빚은 누가 갚아주지 않는다. 가계빚에 허리가 휘고 있는 국민이 장차 갚아야 할 빚이다. 대통령이 되어도 적자재정의 빈 국고를 맡을 거면서, “뭐 해주고 뭣뭣 해준다…”는 등 부도수표로 끝날게 뻔한 사탕발림 남발의 헛공약이 뭣인가를 잘 가려내야 한다. 어울리지 않은 생쇼로 만면 가득히 짓는 비굴한 웃음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국민은 가만히 있어도 잘 살게 해줄 것처럼 하는 말을 믿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는다. 열심히 일 할 수 있기를 원하며 노력의 대가가 제대로 보장되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나와 함께 더 땀흘려 일하자’고 국민사회의 노력을 가일층 당당히 요구할 줄 아는 후보가 보고싶은데 그런 후보는 없다.

‘대통령에게 쉬운 일은 결코 생기지 않는다. 해결하기 쉽다면 대통령 이외의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은 아이젠하워다. 우리에겐 지금 아이젠하워의 말처럼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어려운 일들을 해내는 이런 대통령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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