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나 상처를 남기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 또한 사랑의 힘입니다.” 너무나 식상한 단어로 전락한 ‘사랑’. 예술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사랑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요즘 세상에서 사랑은 자칫 진부하게 느껴질 지 모른다. 각종 매스컴이 보도하는 비인간적인 모습에서 사랑의 실체가 점차 자취를 감추는지도 모른다.
#박영무 경기대 교수는 이같은 세태 속에서 과연 어떤 ‘사랑’ 이야기를 펼쳤을까. 그것도 함축적인 언어가 생명인 시집 ‘1인치의 사랑’(도서출판 이유 刊)의 내면은.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안에 산다./ 구멍 난 가슴들이 상사화로 피고 지고/ 욕망의 빈 씨방만이 허무를 터트린다.// 혼자 가고 싶은 길, 같이 걷고 싶은 사람/ 혼돈의 바람 부는 텅 빈 산사 앞에서/ 오늘도 길을 만들고 또 그 길을 지운다.
‘길’ 중에서
‘구멍 난 가슴’에 핀 ‘상사화’는 시련과 고통을 이겨낸 사랑의 또다른 이름이다. 잃어버린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충만함같이 역설적이다.
오정국 한서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사랑과 허무의 뼈아픈 역설’ 제하의 서평을 통해 “사랑을 잃고 비로소 사랑을 앓는 ‘느낌의 뼈’로 꽉 채워져 있다”며 “결핍된 자아의 낭만적 여정이 바로 주된 정서”라고 설명했다.
시인은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기다림 등을 갈망한다. 애틋한 사랑이야기보다는 기다림을 쫓고 기다림은 애틋함으로 번진다.
기다림은 정류장 앞을 빈 차로 서성이다/ 안타까운 그림자를 한 꺼풀 더 감싸며/ 가파른/삶의 구릉을/ 몸 부비며 넘어간다.
‘길을 가다가’ 중에서
텅 빈 버스는 외로움의 산물이다. 안타갑게 사랑의 대상을 찾지만 풍만한 버스의 부피만큼이나 공허함은 배가 된다. 진정한 사랑을 찾는 방랑자의 스산함이 느껴진다.
사랑의 존재를 찾기 위한 역설은 이 시집의 주조를 이룬다. 별은 빛나고 있건만 나를 위해 빛나는 별은 하나도 없고(별), 모두들 돌아갈 때 나는 홀로 내 길을 간다(모두들 집에 돌아갈 때)처럼 없음과 있음이 반복된다.
김병호 협성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시인에게 사랑은 그 힘을 통해 모든 세계의 상처들로 자신을 확장시키는 메타적 지점이며, 자신을 끝없이 창조하는 존재적 지점”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시집 ‘사랑은 없다’ 이후 6년만에 출간한 이 시집에 대해 “시를 읽지 않는 요즘 ‘사랑’을 테마로 독자들과 더욱 가깝게 다가가고자 했다”며 “지난 시집제목이 너무 단정적이라 1인치 정도 키워보자는 의미에서 제목을 정했다(웃음)”고 말했다.
이 시집은 박 교수가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작 ‘한강에서 만난 다섯 개의 바람’이 눈길을 끈다. 시인은 80년대 초반 갓 입대한 군인 신분으로 당선의 영예를 얻었다. 그러나 군사정권의 검열과정에서 시국상황을 담았다는 이유로 보안대에 끌려가기도 했던 에피소드도 담고 있다.
/이형복기자 bo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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