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조명·영상… 극의 묘미 살려
올해는 유난히 화가들을 소재로 한 연극들이 무대에 올려져 이색적인 트랜드로 부각됐다.
지난 6월 신윤복의 그림을 소재로 한 ‘그림 같은 세상’이 무대에 올려진데 이어 오는 20일 남산국악당 개관기념으로 겸재 정선의 그림을 영상과 소리극으로 표현한 ‘그림 손님’이 무대에 올려진다. 이와 때를 같이해 지난 13~15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달맞이극장 무대에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들을 중심으로 그의 화선세계를 그린 이미지극 ‘선동(仙童·김청조 작·양정웅 연출)’이 올려졌다.
이 작품은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이 연극의 불모지와 같은 지역의 문화기반을 다지는 한편 연극과 생활의 통합을 시도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올해 야심있게 마련한 ‘연극-일상으로 가다’란 주제의 프로젝트의 결실이자 첫 창작품의 성공이어서 반가움을 더해 주었다.
사람이 귀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그림이 있을까? 이 말은 극중 김홍도가 항상 머리 속에서 되뇌이는 화두이다. 극 중에선 되뇌이는 이 말이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풍속화가 되고 자신 또한 그 곳에서 사는 신선이 되기도 한다.
이번 무대는 어머니의 작품을 아들이 연출해 화제를 모았지만 독특한 무대 디자인으로 극의 묘미를 잘 살렸다. 김홍도의 방대한 화선세계와 신선과도 같은 자유로운 영혼의 이미지를 담아내기 위해 무대의 4면을 막으로 둘러치고 객석을 무대 위에 설치, 관객들이 극과 동질화 될 수 있도록 했고 여기에 조명과 김홍도의 풍속화 등 영상이 더해져 새로운 시간과 공간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색다른 무대를 연출했다.
극은 노인 김홍도가 홀로 깊은 산 속 바위에서 비파를 튕기며 상념에 잠기다 산을 내려오는 영상이 흐르는 사이 피리를 부는 신선을 따라 배우들이 뒷걸음 치며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이윽고 홍도 앞에 붓이 등장해 서로 어울리며 그림을 그리고 사면의 막에서는 그림이 퍼져나간다.(1장 급류도-붓과 친구가 되다). 김홍도의 긴 여행이 시작된다. 사람의 냄새가 질펀한 풍속화를 그려나가고(2장 풍속도-사람을 만나다) 궁중에 화사로 들어간 김홍도는 그곳에서 외로운 세손 이산을 만나 그림을 완성한다.(3장 초상화) 무료한 생활에 일탈을 꿈꾸는 홍도(4장 신선도-자유, 이상향을 꿈꾸다), 이어진 막간극에서 금강산을 그리라는 명을 받아 금강산타령을 따라 산을 오르는 홍도. 화첩을 펼치고 금강산을 완성한다.(6장 금강산도-산인가? 사람인가?) 연풍현감이 된 김홍도는 기근으로 그림으로 그릴 수 없어 절망하고(7장 송하선인취생도), 마지막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노년의 홍도. 홍도의 화구를 매고 각 장마다 홍도역을 맡은 배우들이 모두 나와 한판 진혼굿을 펼치며 극은 마무리된다.(8장 단원굿-홍도를 부르다)
극은 출연배우 10명 가운데 1명씩 주인공 김홍도역을 맡아 표현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각 장마다 ‘사람이 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림?’을 찾아가는 김홍도의 여정을 언어는 최대한 자제한 채 몸의 언어로만 표현해냈다.
배우들의 자연스런 움직임은 물론 직접 악기를 다루며 극의 이미지를 표현해 내고, 해학적인 표정들과 알듯말듯한 절제된 대사들, 특히 막간극에서 변사의 코믹한 대사를 따라 연기하는 배우들의 움직임까지 시종일관 관객들의 눈을 자신들의 움직임에 고정시키는 매력을 발산했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모든 움직임을 1m도 안되는 곳에서 이 모든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 김홍도가 자유로운 상상력의 연출가를 만나 그의 예술혼을 불어넣어 주는 소중한 시간과 만난 자리이기도 했다. 김홍도의 그림을 해체했다는 연출가의 말에 호기심이 많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해체는 아니어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극이 모두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느낀 건 무엇인가 빠진 것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상념이었다. 연출가가 홍도의 그림을 이미지로 해체했을뿐 극의 해석은 관객들의 몫으로 돌려놓다고는 했지만 그 해체 이미지 뒤에 있는, 말하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짚어내지 못하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의 예술은 비언어극, 신체극 쪽으로 흐르는 것이 대세다. 안산문예당도 에딘버러나 아비뇽 등 해외진출을 위해 이 작품을 기획한 것으로 안다. 좀 더 다듬어 내년 해외 무대에서 안산문예당의 이미지극 ‘선동’이 빅 히트를 기록하길 바란다.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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