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과 親盧(친노)

대통합민주신당의 요즘 반란이 ‘프롱드의 난’을 연상케 한다. 프랑스 루이1세에 반기를 든 귀족의 난이 새총 모양의 투석기에서 튕기는 돌처럼 속출했던 게 ‘프롱드의 난’이다.

노무현(대통령)을 비롯한 친노파가 대선 참패 규탄의 타깃이 되고 있다. 인적쇄신, 체제정비, 노선수정 등 ‘제자백가의 난무’처럼 쏟아지는 주장의 불평 연유를 이 정권의 실정 책임으로 돌린다.

이상한 사람들이다. 바로 얼마전까지도 정권의 실정을 말하면 얼굴 붉히며 대들던 사람들이 앞다퉈 노무현을 지탄한다.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다. 낙방한 당 후보 정동영이 아까워서도 아니다. 민심에서 영 멀어진 신당의 간판으로는 내년 4월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될 것 같지 않아서 야단들인 것이다.

신당은 노무현 세력이 민주당을 뛰쳐나와 창당한 열린우리당의 세탁정당이다. 그런데 당을 세탁하는 과정에서 그만 6개 계보가 어울리는 잡탕이 됐다. 하긴, 처음이라고 순수했던 것도 아니다. 열린우리당 창당에 도저히 갈 사람이 아닌데도 간 사람들이 많았다. 집권당의 양지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는 이념적 좌파시책에 동조하는 부속품이 됐다. 신당으로 세탁하면서는 권력지향, 정치미아들의 기착지가 되어 온갖 잡새들이 날아들었다.

만약 이번 대선에서 신당이 이겼다면 노무현을 그토록 욕하진 않을 것이다. 지고 나니까 욕하는 것은 책임 회피다. ‘나는 책임이 없고 너 때문에 망했다’는 식의 논리는 비겁하다. 민심에서 멀어진 사람을 욕한다고 해서 민심이 욕하는 사람은 따로 잘 봐주는 것은 아니다. 더 치사하게 본다.

권력의 먹잇감이 팔팔 뛸 때 희희낙락하는 건 응집력이 아니다. 권력의 먹잇감을 날려버린 민심의 폭탄이 터졌을 때 더 뭉치는 것이 응집력이다. 이는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부터 고해성사하는데서 시작돼야 한다. 이제와서 친노세력은 당에서 나가라고 하면 그럼 신당의 정체성은 뭔가, 이제와서 당의 진로를 실용중도로 가겠다면 한나라당과 뭐가 다른가, 예컨대 이명박(당선자)의 대운하 반대가 우리의 본의가 아니라고 하소연한다는 건교부 관료들의 염량세태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못난 정치인들인 것이다.

독수리에게 혼쭐이 나, 날개꺾인 독수리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것은 성했을 때 당한 독수리의 횡포를 잊지 못해서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세력이 비록 한 풀 꺾여 ‘대낮속의 암흑’을 걷지만 동정의 여지는 추호도 있을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들고 일어나는 당내 반발에도 그 말많던 이해찬, 유시민 (의원) 등 마저 찍소리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것은 주목된다.

청와대서 민중항쟁가라는 ‘님의 노래’를 목청높여 합창했다. 축배의 폭탄주를 높이들고 또 들곤 했다. 권력에 취해 들떴던 자칭 민주개혁세력은 권력을 내놓은다는 게 허망할 것이다. 집권의 축배를 드는 것이 생신지 꿈인지 하고 여겼던 것 처럼, 권력에서 물러가는 것 또한 꿈속 같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고독한 종말은 예약된 것이다. 민초도 미리 알 수 있었던 종말을 자신들이 모른 그들의 그간 행진은 그야말로 ‘바보들의 행진’인 것이다.

‘지친 몸을 이끌어 당신의 방으로 찾아왔어요 / 그런데 당신은 벌써 저에게는 되돌아오지 않는군요 / (중략)바깥에서는 찬바람이 윙윙 불어오는데 저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샹송가수 다미아가 부른 유명한 ‘어두운 일요일’의 노랫말 구절이다.

친노의 민주개혁세력이 정계를 떠나지 않고 머물 요량이면 ‘어두운 일요일’을 업보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울리지 못할 ‘빙탄불상용’의 잡탕 세력과는 결별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한 번쯤 떨어져도 좋다는 각오 또한 다져야 한다. 진보를 내세운 좌파 이념의 실패를 시인하고 새로운 출발을 해 보여야 한다. 진보정당다운 탈이념의 진보정당은 보수정당을 견제키 위해서도 필요치 않는 게 아니다.

헤겔은 저서 법철학 서문에서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저녁 때가 되어야 비로소 날아간다’고 했다. 로마 신화에서 지혜의 여신이라는 미네르바도 사자(올빼미)를 띄우는 것은 성숙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정치는 관념의 정서가 아닌 인식의 판단이 앞선다. 이른바 친노 규탄 일색의 신당은 관념의 정서에 치우쳐 있다.

한나라당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정권의 말기적 증상이, 신당의 ‘프롱드의 난’ 등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다. 만능정당처럼 들뜬 문전성시가 반드시 영광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친노세력을 배척하는 신당이 난파되어 배를 새로 만들 것인지, 수리해서 갈 것인지 그리고 어느 항로를 선택할 것인지는 두고 보겠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 있다. 친노를 부정한다고 해서 대선 참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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