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개혁이 정치개혁이다

국가통치기구의 국민 신뢰도 회복이 급하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이에 깊은 고민을 해야할 때다. 고려대 박종민 행정학 교수가 최근 한국행정학회에 낸 논문 ‘정부 신뢰와 정치혜택 및 정부 공정성에 대한 태도’ 주제에서 이같은 위기 수준이 제시됐다.

이에 의하면 행정·사법·입법부 등 3부에 대한 종합 신뢰도를 2007년 기점으로 한국행정연구원 조사 등을 비교한 결과, 12%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3부별로는 사법부 48%, 행정부 33%, 입법부 18% 순으로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가장 높다.

불신의 이유는 국민이 혜택을 별로 또는 전혀 느끼지 못한다, 세금을 낭비한다, 특권층을 위해 일한다, 대부분 부패했다, 거의 법을 안 지킨다는 것 등으로 집약됐다. 이는 국민적 사회정서와 대체로 맞아 떨어지는 점에서 주목된다. 앞으로는 지방자치가 지역사회와 지역주민이 부담하는 막대한 자치비에 비해 자치이익을 얼마나 창출하는 가에 대한 연구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3부 가운데 꼴찌면서도 사법·행정부에 비해 신뢰도 격차가 그나마 현격하게 떨어지는 국회다. 지금 정치권은 오는 4·9 총선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다.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이긴 건 이긴거고, 대통합민주신당 등은 이미 진 건 진 것이고 해서 대선 승패간에 정치인들 저마다 총선서 자기 살 궁리에 바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치개혁의 시대적 요구가 절실하다는 사실이다. 국회는 정치의 본산이다. 정치개혁은 국회개혁과 바로 연결된다. 예컨대 미국의 의회, 특히 하원의 지방출신 의원들은 대다수가 의원회관에서 숙식을 해가며 의회도서관 등에서 의정연구에 몰두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도 변해야 한다. 건달 국회의원들은 추방해야 된다.

국회의원 수부터 크게 줄일 필요가 있다. 도대체가 너무 많다. 국회의원 4년 임기동안 1인당 지출되는 돈이 세비, 보좌관 비서진 인건비, 기타 등을 통틀면 약 88억원에 이른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299명 앞으로 2조6천312억원 가량이 쓰인다. 국민은 멱살잡이 패싸움 국회나 보자고 세금을 내는 게 아니다. 국민은 네거티브 정치나 하라고 뽑아보낸 게 아니다. 국민은 놀고 먹으라고 국회를 두는 것이 아니다.

국회개혁을 위해서는 국회의원 선거방식부터 고쳐야 한다.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완전 공영의 시·도별 중선거구제로 하고, 각계 전문가 출신의 비례대표를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 ‘지구당’ 제도가 폐단이 있다해서 고친 게 ‘당원협의회’ ‘당원지역협의회’로 됐으나 이름만 바뀌었을 뿐 그게 그것이다. 이런 소선거구 중심으로는 지연·혈연·학연에 얽힌 특정인 왕국, 돈타락 선거의 폐해를 면하기가 쉽지 않다. 소선거구제에 따른 토착비리의 발호 또한 불식키 어렵다.

이에 비해 선관위주도의 완전 공영선거에 의한 중선거구제로 하면 사실상의 지구당인 ‘협의회’ ‘지역위원회’ 등 유지가 필요없게 되고, 공명선거가 가능하고, 유능한 국회의원이 많이 배출되는 길이 트인다. 국회의원 수도 재조정해 자연스럽게 줄일 수 있다. 적어도 국정에 전념할 수 있는 생산적 국회의원 배출효율이 지금보단 훨씬 높다.

문제는 이런 국회개혁 입법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국민신뢰도가 겨우 18%에 머무르는 국회인 데 있다. 집단이익의 기득권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회야말로 당을 불문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진짜 꼴통보수 집단인 것이다. 하지만 포기해선 안된다. 어떻게든 정치개혁 차원의 국회개혁은 앞으로 강구돼야 한다.

프랑스 7월 왕정시대(1830~1848년)에 의회정치를 풍자한 이런 말이 있었다. ‘의회란 어떤 지위에 얻어 걸리기 위하여 양심과 물물교환하는 큰 시장이다’라고 했다. 국회의원이 심지어는 가족까지도 공직을 제공받고, 금융이나 재판상의 특권을 누린데 대한 민중의 저항으로 그같은 말이 나왔던 것이다. 또 19세기 초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맨체스터 같은 신흥도시가 곳곳에 생긴 반면에 구도시에는 많은 이주민이 생겨 거의 공동이 되고, 심하게는 지형이 바뀌어 바다속에 잠긴 지역이 있는데도 의회가 선거구 조정을 한동안 하지 않았다. 텅 빈 구도시에 더 많이 배정된 의원 자리를 향유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지역이 바다에 잠긴 곳은 서류상 유권자인 사람들을 배로 태워가 잠긴 곳 바다위에서 투표케한 일이 다 있었다. 이리하여 ‘배를 타고 바다위서 투표하러 간다’는 말이 나오기까지한 웃지못할 일은 1832년 선거법을 개정하고 나서 비로소 없어졌다.

대한민국 국회의 폐해가 과거 프랑스나 영국 의회와 물론 같지 않더라도, 집단이익에 치우쳐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소선거구제는 건국 이후 60년동안 시행해온 제도다. 제2공화국이 양원제를 하면서 참의원은 중선거구제를 한 번 했으나 민의원은 역시 소선거구제로 했다. 단원제 국회에서 소선거구제를 더 고집하는 게 세상이 달라진 시대상에 합치되는지 심도있는 논의가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대선 승패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18대 국회 진출로 정치생명을 연장하고자 하는데 혈안일뿐, 국회개혁은 안중에 없다. 한나라당은 국정 원활을 위한 과반의석 확보에, 신당은 이의 저지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나 정치개혁 의지는 안 보인다. 국회개혁을 공약으로 표방하는 입후보자나 정당이 나와야 할 터인데 역시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래도 개혁을 촉구해야 하는 것은 국민신뢰도 18%는 국민의 저주이기 때문이다. 국회가 ‘마의 소굴’같은 인식에서 탈피하는 길은 국회개혁에서부터 시작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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