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과 모자람에서 나오는 웃음의 힘
<다즐링 주식회사>
● 원재 : The Darjeeling Limited, 2007
● 감독 : 웨스 앤더슨
● 출연 : 오웬 윌슨, 에드리언 브로디, 제이슨 슈왈츠먼
진정한 웃음은 단지 찰나의 즐거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진짜 코미디는 한순간 실컷 웃고 나서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는 힘이 있다. ‘힘들어 보이는 노동자가 힘겹게 길을 가다 바나나껍질을 밟고 넘어지면 측은한 심정이 든다. 하지만 잘 차려입고 거들먹거리는 신사가 넘어지면 폭소가 터진다.’ 찰리 채플린의 예리한 지적처럼, 웃음이란 우리들의 가식과 위선을 폭로하는 무기이자 인생의 괴로움을 위안하는 치유제이기도 하다. <무한도전> 이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평균 이하의 캐릭터임을 노골적으로 과시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이웃이 갖은 고난을 겪으며 바보짓을 하는 것이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 공감을 주기 때문에. 그들의 바보짓에 조롱을 하다가도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무한도전>
어리석음을 비웃다가 공감하게 하는 코미디는 <다즐링 주식회사> 를 만든 웨스 앤더슨 감독의 특기다. 아버지가 죽은 후 1년간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던 망나니 삼형제가 인도 여행을 간다. 갑자기 수녀가 되겠다며 인도로 떠난 후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다. 오토바이를 타다가 굴러 얼굴 전체에 붕대를 휘감은 큰 형 프랜시스는 언제나처럼 강압적으로 동생들을 몰아붙인다. 둘째 피터는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불안감에 오히려 이혼을 생각한다. 막내 잭은 헤어진 애인에게 집착을 하면서도 스치는 여자마다 수작을 거는 바람둥이다. 부잣집 자식들인 삼형제는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에게 애정도, 관심도 있지만 이상하게 함께 지내면서 뭔가를 행동에 옮기면 심하게 어긋나고 결국은 싸우게 된다. 늘 환각제에 빠져 살고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다가오면 도망쳐 버리고,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면으로 맞서지는 못한다. 그런 삼형제가 그들이 사는 서구 사회와는 전혀 다른 가치와 세계관으로 움직이는 인도 여행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아니 깨닫기 이전에 몸으로 무엇인가를 느끼게 된다. 깨달음이 없어도 문득 알게 되는 것이다. 다즐링>
<바틀 로켓>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로얄 테넨바움>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 등 앤더슨의 영화에는 언제나 삶의 방향이 뒤틀린 사람들이 나왔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분명히 이상한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 그들에게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있고, 그 상처의 후유증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괴로워한다. 그러면서도 상처를 내보이기는 싫어하는 자존심 강한 상류층 혹은 지식인이다. 물질적으로는 하등 부족한 게 없는 그들이 뒤엉켜 소동을 벌이다가는 결국 자신들의 맨얼굴을 보고 화해하게 된다. 우리 역시 이상한 놈들이라고 생각하며 보다가 어느새 그들에게 동화되어버린다. 조금 과장되고 뒤틀렸지만 그건 우리들이 일상에서 수없이 보거나 경험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순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앤더슨은 홍상수의 영화처럼 폭력적으로 우리들을 발가벗기지 않는다. 어리석음을 드러내면서도 따뜻하게 감싸안아준다. 그래서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웃기면서도 편안하다. 스티브> 로얄> 맥스군> 바틀>
오리엔탈리즘-서구인의 시선에 갇힌 한계
웨스 앤더슨의 영화 세계는 작은 소우주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무엇을 말하는 대신 친하고 익숙한 사람들과 그들만의 안정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한다. 프랜시스를 연기한 오웬 윌슨은 <바틀 로켓> <로얄 테넨바움> 의 각본을 함께 쓰고 연기도 한, 앤더슨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다.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로얄 테넨바움>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 에 나왔던 빌 머레이는 <다즐링 주식회사> 의 앞뒤에 잠깐 출연해준다. <로얄 테넨바움> 의 안젤리카 휴스톤은 삼형제의 어머니로 다시 나온다. 잭을 연기한 제이슨 슈왈츠먼은 함께 각본을 썼고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는 <대부> 의 감독 프랜시스 코폴라가 삼촌이고 배우인 탈리아 샤이어가 어머니인 할리우드의 명문가 출신이다.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언제나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안정적이고 차분하다. 대부> 로얄> 다즐링> 스티브> 로얄> 맥스군> 로얄> 바틀>
그의 영화는 할리우드의 천박하고 떠들썩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문학과 미술, 음악 등 고급문화의 향취가 물씬 풍겨난다. 그런저런 이유로 대중적인 영화도 아니다. 기이한 사건이 충격적으로 연발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희극적인 상황이 이어지지도 않는다. 화장실 유머나 엽기적인 행각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전작인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 에 대한 “스토리와 놀라움 부족은 나를 화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이 영화의 관람시간 대부분이 매우 즐거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평처럼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는 은근한 즐거움이 만재해 있다. 또한 배신, 죽음, 구원과 용서 등 보편적이면서도 절실한 인간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 은근히 깔려 있다. 거대하면서도 일상적인 문제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미세한 감정을 매력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그의 영화다. <다즐링 주식회사> 의 마지막 장면에서 웨스 앤더슨은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달리는 기차 안에 집어넣는다. 파리에서, 이탈리아에서,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언제나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창밖을 바라보고, 지금 지나는 곳이 어디인지 보지 않으면 그런 사실을 쉽게 잊어버린다. 하지만 잘못된 길이라도 어디론가 달리는 그 순간이 가장 빛나는 것이다. 웨스 앤더슨은 그 착오의 순간을 매혹적으로 어루만지는 포근한 예술가다. 다즐링> 스티브>
하지만 <다즐링 주식회사> 는 전형적인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을 드러내기도 한다. 인도라는 공간은 서구인의 성찰을 이끌어내는 원시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문명이 여전히 자연의 품안에 머무르는 곳. 그 안에서 서구인들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다시 떠나간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서구인의 눈에 관찰된 인도인의 내면은 그려지지 않는다. 물론 서구인이 만든 영화가 그들의 서선으로 그려진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도나 아시아를 다룬 영화 대부분에 등장하는 아시아의 모습이 늘 ‘신비’의 공간으로만 등장하는 것은 분명 어색한 일이다. 특히 아시아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다즐링>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다즐링>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