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제나라 공족 맹상군의 집엔 빈객 3천여명이 모여들었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조정에서 파직되자 빈객이 구름떼 같았던 게 눈을 씻고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많은 사람들이 내 처지가 이렇게 되니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났구나!”하면서 탄식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처지가 맹상군과 비슷한 것 같다. 권력을 쥐었을 때와 권력을 내놓을 때가 다른 염량세태에 뼈저린 고독감을 갖는 기색이 역력하다. 관료들도 전같지 않고, 정치인들도 전같지 않으며 민심은 더더욱 전같지 않다. 그래서 ‘노사모’ 사람들을 적막강산이 된 청와대로 불러들이곤 하여 챙기는듯 싶다. 듣건대 시골 봉하마을에도 초청한 모양이다.
비스마르크는 독일 근대화의 비조다. 외치로는 유럽외교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내치로는 1871년 독일 통일을 완성, 자본주의 육성으로 경제부흥을 일으켰다. ‘독일 청년에게 고함’은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 젊은이들의 역할에 자긍심을 심어준 유명한 연설이다.
그의 개혁정책은 철두철미하기가 비수와 같았다. ‘철혈재상’이란 말을 들었다. 피도 눈물도 없던 철의 재상이 마침내 눈물을 보인 건 사임하고 나서다. 새로 즉위한 빌 헬름 2세와의 이견 충돌로 1880년 낙향할 때다. 연도마다의 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를 알아봐 손을 흔들며 환송하는 군중을 보고 흘린 눈물이다. 과감한 개혁정책으로 원망을 사기도 했던 비스마르크 자신으로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망외의 민심에 눈시울이 뜨거웠던 것이다.
노 대통령 또한 많은 개혁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저돌적으로 밀어 붙였다. 비난, 비판의 소리에 개의치 않고 그 역시 힘으로 몰아댔다. 이제 남은 임기 32일을 채우고 서울 효자동 1번지 청와대를 떠나 봉하마을 사저로 돌아가는 전직 대통령 노무현을 보고 그의 눈시울을 뜨겁게 할 시민들 환송이 있을까, 의리를 내세우는 진골 ‘노사모’면 몰라도 아마 있을 것 같지 않다. 자연인 노무현이 만약 눈물을 머금는다면 손 떠난 권력에 대한 금석지감의 아쉬움일 게다.
민심만이 아니다. 정치권의 친노세력 역시 지리멸렬하다. 노 대통령이 만든 열린우리당을 바꾸고 또 바꿔 신장 개업한 ‘세탁정당’ 대통합민주신당에서도 배척 당하는 판이다. 이해찬, 유시민 의원 같은 사람은 견디다 못해 탈당했지만 어디 갈 곳이 없는 정치미아 신세가 됐다.
노 대통령의 개혁은 대체로 그 기조가 없는자와 가진자 간의 의도적 계층 대립구도로 집약된다. 가진자를 눌러 없는자를 살린다는 것이다. 그 통로가 분배 지상주의다.
그러나 이런 이념 철학은 양극화 해소는 커녕 중산층을 붕괴, 영세민층으로 전락시키면서 양극화 격차를 더 벌려만 놨다. 성장을 둔화시킨 분배 위주 등으로 나라 빚을 300조원 대의 빚더미 위에 올려놨다. 실업자가 양산되고 생업이 부진한 가운데, 수지 균형이 안맞는 서민층 가계는 가구당 평균 3천500만원 꼴 되는 빚을 져 금융불안의 요인이 됐다. 전국을 부동산 투기장으로 만들었다.
노 대통령의 생각이 성공했다면 가진 것 없는 계층의 서민들은 그의 귀향길을 아쉬워해 뜨겁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지난 5년에 몸서리 치는 것은 가진 사람들 보단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더 한다.
정책 실패도 그렇지만 도덕성이 타락된 것이 노무현 정권이다. 이른바 자칭 민주화세력들 끼리끼리 해먹은 정권인 것이다. 내편에는 한없이 관대하고, 네편에겐 무자비한 권력의 부도덕성이 민초의 마음을 얻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봉하마을 사저에 160억원을 들이는 것도 마뜩찮다. 그가 진정 가진 것 없는 계층을 위한 지도자라면 사저만도 대지 3천992㎡에 연건평이 900㎡나 되는 저택을 차마 지을 수 없는 것이다. 이로도 모자라 생태연못 숲조성, 생가복원, 기타 등 아방궁을 연상케하는 성역화를 이루고 있다.
베트남의 호찌민이 인민의 숭앙을 받는 것은 평생을 민초와 똑같은 의식주 생활을 한 청렴성 때문이며, 프랑스의 드골이 국민의 존경을 받는 건 고택 생가에서 동네 어린이들과 여생을 보내다 마을공동묘역에 묻힌 품격높은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노무현식 공식을 그의 공·사생활에 대입해 생각해 보면 그 자신이 청산될 개혁 대상이다. 언필칭 기득권을 항상 말한대로 그 자신이 이미 기득권자이고 가진 계층이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정부조직법개정안이 맘에 안드니까 거부권을 행사, 이명박 차기 정부 출범의 순항에 재를 뿌리겠다는 것은 황당하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찍어다 붙여도 ‘못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심사와 다를 바가 없다. 임기말 대통령의 권한을 이런 맘보로 써먹겠다는 건 무지막지해도 너무한다. 삐닥하게 나가야 자신의 존재가 안죽고 살아있는 걸로 믿는 게 아닌지 모르겠으나, 삐딱한 심보는 고독을 불러들인다.
곧 떠날 대통령에게 굳이 더 말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 부득이 한 번 더하게 됐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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