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관광을 시작한다하여 필자 나이 40 중반을 넘기기 까지 부모님 모시고 변변한 여행 한번 못시켜드려 아주 큰마음을 먹고 부모님 중에 어머님은 평소에 지병으로 잘 걷지 못하여 갈 수 없다고 판단하여 우리 가족 셋과 아버님 이렇게 넷이서 함께 갈 요량으로 개성관광을 3주 전에 예약을 해 놓았다. 개성관광을 며칠 앞두고 수년간 지병으로 고생하시던 어머님의 건강이 갑자기 좋지 않아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입원하게 되었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문병을 아버님과 함께 다니던 중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계시는 어머님께 아버님 모시고 내일 개성관광을 가려고 하는데 이해해 달라하니 당연히 잘 다녀오라 하신다. 다행히 개성관광은 당일 여행이라 하루만 문병을 못 할뿐이어서 죄송스럽지만 아버님만을 모시고 개성관광을 위해 과천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하였다.
아버님은 차에 오르시면서 상기된 어조로 6·25 전쟁에 대해 당신이 경험했던 북한 군인과의 전쟁에 대해 상세히 말씀을 하기 시작하였다. 참고로 우리아버님은 올해 여든(80세)이 되셨다. 무시무시한 전쟁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덧 1시간 정도 걸려 임진각역에 도착하게 되었다. 남북간의 절차에 의해 수속을 받은 후 드디어 말로만 듣던 휴전선을 지나 개성공단을 옆으로 경유하여 첫 번째 관광지인 박연폭포를 관광하였다. 박연폭포 앞에 설치된 간이 매점에서 산삼차를 1달러를 지불하고 아버님과 함께 추위를 녹였다. 박연 폭포 관광을 마치고 내려와 버스정류장에서 함께 간 일행들을 기다리면서 북측 안내원에게 북측은 모든 글씨들(선전문구중에 김일성과 김정일)이 빨간색으로 쓰는데 우리들이 배운 것은 사람이름은 빨간색으로 쓰지 말라고 어렸을 때부터 배웠는데 북측은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대답인즉슨 사람의 피도 빨간색인데 얼마나 소중한 색입니까? 라고 대답하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들이 평소에 사용하는 도장의 인주도 빨간색이라는 것이 순간적으로 생각이 났다. 아 그렇군요. 이와 같은 대화로 나는 북측 안내원과 친해지기 시작하였다. 관광을 마치는 동안 줄곧 북측 안내원과 대화를 나누었다. 북측의 생활상과 남측의 생활상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어느덧 점심식사를 하러 식당에 도착하였다.
점심식사 메뉴는 반찬이 11가지정도의 놋그릇 종지에 육류(돼지고기)와 생선 그리고 나물 종류와 밥과 국이 준비 되었다. 그리고 반주로 북측의 소주 한잔으로 입맛을 돋웠다. 밥은 아버님의 말씀이 우리나라 예전에 통일 쌀인 듯 하다며 먹기가 곤란할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반 공기정도 먹다가 도저히 먹지 못하고 수저를 내려놓고 말았다. 그러면서 내가 잘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왜냐 하면 북측에서는 최고의 쌀로 밥을 준비했을 텐데 반밖에 먹지 않고 수저를 놓은 것에 대한 미안함이랄까? 아무튼 식사를 마치고 식당위에 멀리서 보이는 김일성 동상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북측안내원 말에 사진을 찍으려는데 옆에 계시던 다른 관광객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찍으려니까 당장 불호령이 떨어진다. 경건하게 찍지 않으려면 찍지 말라고 핀잔을 준다. 이 말을 듣던 관광객은 재빨리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몇 군데의 계획된 나머지 관광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도착하였다. 우리 아버님은 집에 도착해서도 줄곧 어머님에 대한 건강 걱정과 북측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 걱정하셨다. 북측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통일이 돼서도 걱정이구나?
김성대 극동대 호텔외식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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