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구단

1980년 프로야구가 처음 생길 적에 말이 많았다. 프로 세계의 생명인 흥행이 잘 안될 것이라고들 했다. 실업 선수들을 프로 선수로 급조한들 그 얼굴이 그 얼굴 때문이라고들 했다.

이때문에 처음엔 프로야구팀 창단을 망설였던 재벌들이 갑자기 나선 것은 전두환 정권의 강압이 어지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조건 떠맡기다시피 했던 것이다.

전두환 정권이 그처럼 프로야구 창설을 서둔 것은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국민사회의 의문을 스포츠로 희석시키기 위해서였다. 정권의 명운을 걸고 적극 유치한 88 서울올림픽도 같은 맥락이다. 이 외에도 적잖은 선심 정책을 썼다. 건국 이후 그때까지 35년간 존속하던 야간 통행금지 시간을 폐지한 것도 전두환 정권이다. 음력설은 공휴일이 아니던 것을 ‘민속의 날’이라고 하여 설날 하루를 공휴일로 처음 지정한 것도 그 무렵이다. KBS, MBC에 미처 준비가 덜된 컬러방송을 서둘러 앞당기도록 했고,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교복 자율화를 시행하기도 했다.

프로야구는 출범하자 마자 예상을 깨고 대박이 터졌다. 실업야구에서 전환한 프로선수 1세대들의 비상한 노력으로 흥행이 주효한 것이다. 김봉연(해태) 이만수(삼성) 장효조(〃) 김재박(청룡) 박철순(OB) 최동원(롯데) 김성한(해태) 김일권(〃) 김우열(OB) 김시진(삼성) 박종훈(OB) 김용희(롯데) 김용철(〃) 이상윤(해태) 윤동균(OB) 신경식(〃) 이종도(〃) 이광은(청룡) 이해창(삼성) 이선희(〃) 유두열(롯데) 김인식(청룡) 등은 그 무렵 주요 멤버들이다.

프로야구 출범에 의문이 분분한 가운데서도 ‘한국야구 발전을 위해서는 프로팀 창설이 있어야 한다’고 줄곧 주장했던 야구인들이 있긴 있었다. 명해설자로 손꼽혔던 이호헌씨,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 등이 그에 속한다. 고인이 된 김 감독은 청룡팀 감독을 지내고 스포츠 탤런트로 브라운관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프로야구 제8구단을 창단하는 센테니얼측과 현대선수단 간의 구조조정을 둔 불씨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선수들은 ‘100%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반면에 구단은 ‘메인 스폰서와 계약을 앞두고 분쟁이 야기되어 선수들을 더 안고 가기가 어렵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선수들에게 ‘구단주에 고용승계의 성의를 요청하겠다’며 구단이 계획한 제주 동계 전지훈련에 참석토록 설득했다. 시즌이 곧 다가온다. 좋은 마무리가 있게되길 기대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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