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필’ 평양공연

‘미제국주의 문화’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도 평양 복판의 대동강변 동평양대극장에서 초유의 환대를 받았다. 지난 26일 오후 6시다. 뉴욕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이다. 창단 166년의 전통을 가진 뉴욕 필의 1만4천589번 째 평양공연은 이렇게 특별했다.

무대 왼쪽에는 성조기, 오른쪽에는 인공기가 게양됐다. 북녘이 말하는 공화국 헌법은 국기와 국가며 수도를 규정해놓고 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국기는 기발(깃발)의 가운데에 넓은 붉은 폭이 있고 그 아래우(위)에 가는 흰 폭이 있으며, 그 다음에 푸른 폭이 있고 붉은 폭의 기대(깃대) 달린쪽 흰 동그라미안에 붉은 오각별이 있다. 기발의 세로와 가로의 비는 1 대 2이다’(제169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국가는 애국가이다’(제170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도는 평양이다’(제171조).

이토록 존귀하게 규정한 평양에서 제국주의 문화가 공연되면서 원쑤(원수)의 성조기가 공화국 인공기와 나란히 게양되고, ‘성조기여 영원하라…’의 미국 국가가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의 공화국 국가와 함께 연주된 것은 역사의 획기적인 변화다. 뉴욕 필 공연단 평양 방문에 앞서 거리에 나붙은 ‘미 제국주의 침략정책을 규탄한다’는 등, 철거한 반미 구호를 또 갖다 붙인다 할지라도 전례없는 변화인 것은 틀림이 없다.

러시아 국영 NTV는 ‘바이올린 외교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북·미 해빙 무드의 전주곡’이라고 한 것은 중국 신화통신이다. 로이터통신은 ‘북한의 외교 쿠데타’라고 전했다. ‘싱송(sing song) 외교의 새 장을 열 역사적인 공연’이라고 한 것은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다. 전세계 신문·방송·통신사에서 130여 명이나 현장 취재를 위해 평양에 갔다.

보도 내용을 간추려 본 공연의 우호 분위기는 상상을 넘어선다. “좋은 시간 되세요. 즐겁게 감상하세요” 노(老) 거장 로린 마젤 지휘자의 우리말 인사다. 연주곡 소개끝에 가진 우리말 인사에 천오백석을 꽉 메운 관객은 미소와 박수로 화답했다. 미국 작곡가 거슈원의 ‘파리의 미국인’을 공연하면서는 “앞으로는 평양의 미국인이 작곡될지도 모른다”는 익살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 교향곡 등에 이어 첫 앙코르 곡으로는 비제바 작곡 ‘아를의 여인’ 모음곡 중 가무곡인 ‘파랑돌’을 연주, 고조된 분위기 정서로 무대와 객석이 함께 어우러졌다. 피날레곡으로 민족 전통 민요 ‘아리랑’이 연주됐다. 공연이 끝나고도 단원들과 관객들은 서로 손을 흔들며 한동안 자릴 뜨지 못했다. 평양정권 고위층 인사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쳤다.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부위원장, 강능수 문화상, 박경철 민족화해협의회 부회장 등 문화·외무·무역성 관계자들과 민화협 인사 등이 대거 참석했다.

조선중앙텔레비전 방송이 103분의 공연을 그대로 실황중계한 것 또한 지극히 이례적이다. 방송 예고까지 한 생중계는 미국의 국기며 국가를 앵글 조작이나 음향 조작없이 있는대로 보여주고 들린대로 들려 주었다. 안내 자막도 방영했다. 뉴욕 필 평양공연은 말 그대로 완전히 개방됐다.

물론 이같은 북측 반응이 개방·개혁의 징후인 것은 아직 아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 방문 중 “뉴욕 필 평양공연은 좋은 일이지만, 북한 정권은 여전히 북한 정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의 성사가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북측 외무성 부상이 이면의 주역인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1971년 미국과 중국이 탁수선수단 경기를 교환한 것이 두 나라 국교 정상화를 가져온 ‘핑퐁외교’처럼, 뉴욕 필 공연을 ‘싱송외교’로 보는 관측은 일리가 있다. 실제로 1950년대 뉴욕 필의 모스크바 공연이 소련 개방을 가져오는 데 단초가 된 전례가 있다.

그러나 데이트 한 번으로 연애하는 사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사이가 서먹할 것 같으면 극장엘 가기도 한다. 핵 무기를 둔 북측의 신고의무 미이행, 꼬인 6자회담 등 뭔가 막힌 물꼬를 트는 데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 뉴욕 필 평양공연이다. 문화교류는 잦아야 한다. 문화교류만이 아니고 스포츠교류도 좋다. ‘제국주의 문화’를 불러들이는 것을 ‘트로이의 목마’로 보는 북녘 내부 반발도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재앙의 목마가 아닌, 축복의 목마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인식의 문제다.

평양정권이 뉴욕 필 공연을 받아들인 것은 정치적인 다목적 포석이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대외 메시지, 그리고 대남 메시지 역시 담겨져 있다. 모종의 정략적 속셈이 있는 담담타타(談談打打) 전법일 지라도, 완만한 변화가 불가피한 현실을 수용하고 있는 것은 부정될 수 없는 사실이다.

뉴욕 필 평양공연이 있던 같은 날, 개성서 열린 2010 월드컵축구 아시아 3차 예선 남북한 경기 실무협의에서 북측은 예의 평양 경기에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거부했다. ‘원쑤’(원수)의 미제국주의 국기와 국가는 게양하고 연주해도 되고, 동족의 국기와 애국가는 안된다는 것은 저들이 말하는 ‘민족·자주’의 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러나 이것이 봉남통미(封南通美)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북측은 대남교류 및 지원을 외면할 수가 없다. 월드컵 3차 예선은 제3국으로 가서 치르면 된다.

태극기, 애국가 또한 인공기와 저들 국가가 남쪽 전주에서 일찌기 게양되고 연주됐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녘 땅에서 게양되고 연주될 날이 있을 것이다. 왜냐면 변화를 거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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