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라 大고구려!
북녘에서 불어 오는 높새바람은 역시 위대했다. 어쩌면 수세기 동안 동아시아 최강의 제국의 영토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일어나 백두산에서 거칠게 포효한 뒤 두만강과 압록강 등을 건너 한걸음에 달려왔을….
파주의 덕진산(德津山)은 반세기 동안 철저하게 사람들의 발길이 통제되고 있는 민통선 안에 차분하게 앉아 있다.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산 13 덕진산성.
이 산성은 2천년의 세월을 밀어 버리고 이방인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고구려였다.
이곳은 천연적인 요새, 그 자체였다. 연천 쪽에서 내려오는 임진강은 걸쭉하게 앉아있는 초평도를 사이로 양 갈래로 흐르다 덕진산성 앞에서 만나 다시 서해로 흘러간다. 초평도 건너편은 장산뜰. 멀리 동쪽으로 파평산과 감악산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탁 트인 들녘 한켠에 자리를 잡은 덕진산성. 이곳에서 연기를 피우면 순식간에 달음박질해 달려나갈 그런 거리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용됐던 가장 빠른 통신수단이었던 봉화도 덕진산성에서 최고의 효과를 거두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조명되진 않았지만, 고구려의 위대함은 이처럼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실용과학 측면에서도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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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진산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임진강은 차갑게 얼어 있었다. 원래 만조시 서해의 소금기가 섞인 바닷물이 역류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추위에는 얼지 않는다는 강물을 이처럼 꽁꽁 묶은 추위도 위대해 보였다.
/글 김효희기자·사진 김시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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