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까지 방송국에는 가수와 앨범을 홍보하는 매니저들이 득시글거렸다. 한번이라도 자기 가수가 TV에 출연하고, 라디오에 노래가 나오게 하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새천년 들어서는 가수 매니저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TV에 가수가 얼굴을 비쳐도, 아무리 라디오에 노래가 많이 나와도 소용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방송국 로비는 한산하다.
그래도 몇몇 매니저들이 보인다. 성인음악, 말하자면 트로트 앨범을 알리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젊은이 대상의 음악을 홍보하는 매니저들은 사라졌지만 트로트 매니저만은 나름의 분주한 발걸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나마 트로트 음악의 시장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과거 젊은 가요들이 판칠 때 트로트 음악은 기를 펴지 못했다. 태진아, 송대관, 현철, 주현미 등 몇몇 기존 트로트 스타들만이 활발하게 움직였을 뿐이다.
장윤정의 ‘어머나’는 모든 것을 바꿨다. 우선 트로트 가수들이 젊어졌다. 신세대 트로트란 이름으로 장윤정, 박현빈, LPG 등 나이 어린 트로트 가수들이 잇따라 출현했다. 심지어 틴에이저 걸들에게 압도적 인기를 자랑하는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들도 ‘로꾸거’라는 트로트 곡을 내놓았다. 트로트의 위세는 지난해 대선 때 절정에 달했다. 후보들의 유세장마다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의 노래가 어지럽게 울려 퍼졌다.
대중들을 상대로 표밭을 일구려는 대선 후보들 입장에선 캠페인이나 로고송 등으로 대중의 정서와 가장 밀착된 노래를 선호하게 돼 있다. 역사적으로 다수의 서민들과 함께 해온 장르인 트로트가 쓰임새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비록 젊은 가요에 밀려 허덕였지만 트로트는 죽지 않는 음악임이 다시금 확인됐다. 이같은 추세를 놓칠 새라 원래는 젊은 가요를 만들다 근래 들어 트로트로 전향한 제작자들이 부지기수다. 이때문에 방송국에 트로트 매니저들의 출입이 상대적으로 잦아진 것이다.
트로트 가수가 젊어지고, 전에는 트로트를 외면하던 청소년층으로부터도 호응받는 것은 반갑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신세대 트로트가 젊은이들의 감각과 요즘 들어 대중문화의 키워드로 떠오른 재미에 힘입어 부상한 만큼, 여전히 기성세대는 소외돼 있다는 사실이다. 어른들은 요즘 트로트가 트로트 특유의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불평을 토로한다.
지금의 트로트는 장조와 빠른 템포로 획일화돼 있다. 가슴 저미는 차분한 곡들이 거의 없다. 설령 있어도 홍보하는 노래는 죄다 빠른 노래들이다. 오히려 반대로 SG워너비나 VOS 등 젊은층 대상의 가수들이 애절한 노래를 부른다. 트로트가 자랑하는 심금을 울리는 비애의 정서를 젊은 가요 쪽에 뺏긴 형국이다. 신세대 트로트라고 하지만 가사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장윤정의 ‘어머나’ 때만해도 신선하고 재미가 있어 관심을 보였지만 갈수록 가사가 통속적으로 흐르자 최근 젊은층 팬들이 급격하게 빠져나가고 있다.
모처럼 돌아온 트로트시대를 살리기 위해선 음악적인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경제·사회적 고통에 시달리는 대중을 어루 만져주는 공감 가는 멜로디와 실한 노랫말의 트로트가 시급하다. ‘목포의 눈물’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잃어버린 30년’, ‘내 마음 별과 같이’ ‘비 내리는 영동교’ 같은 노래들이 왜 나오지 않는 건가. 대중의 마음을 감싸고 위로해주는 진정한 트로트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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