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먹는 미생물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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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정화기법’은 주로 미생물의 생분해능력을 높여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기술이다. 생물활성화법과 생물접종법 두 가지가 있다. 생물활성화법은 자연환경에 존재하는 기름 분해 미생물의 자연정화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질소, 인 등 무기 영양물질을 첨가하는 방법이다. 서서히 녹는 복합비료를 쓰기도 한다. 생물접종법은 영양물질과 함께 유류 분해 능력이 뛰어난 균주를 추가로 접종해 분해 속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자연적으로 분포하는 미생물의 유류 분해 능력이 낮거나 기름에 난분해성 물질이 다량 함유돼 있을 때 활용한다.

바닷물 1㎖ 속엔 1만~100만 마리의 미생물이 사는데 태안 앞바다 처럼 기름유출 사고가 나면 독성 때문에 이들 대부분은 죽고 만다. 하지만 기름 성분을 분해하는 소수의 미생물들은 살아남는다. 생물정화는 이런 토착 미생물이 기름을 더 잘 분해할 수 있도록 양분을 주어 활성화시키거나, 기름 분해 능력이 탁월한 외부 미생물들을 오염현장에 넣어주는 기법이다.

미생물은 원유에 포함된 탄화수소를 먹이로 삼아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하면서 증식한다. 따라서 미생물의 힘을 빌리는 생물방제는 물리적·화학적 방제에 비해 노동력이 덜 들고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는 이점이 있다.

생물방제는 1989년 알래스카 엑손 발데즈호 사고 때 대규모로 채용된 이후 프랑스, 이스라엘 등에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생물정화제제 기술은 환경부가 19992년부터 10년 동안 19억여원을 들여 개발을 마쳐놓고도 국토해양부와 해경, 환경부 사이의 이견을 조정하지 못해 6년째 현장 적용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해양연구원이 2002년 국내에서 발굴한 유류 분해능력이 탁월한 미생물 세 종을 혼합해 원유의 지방족 탄화수소는 50%, 방향족 탄화수소는 25%까지 분해하는 미생물 제제를 개발하긴 했다. 정부가 모랫속에 스며들거나 바위틈에 박혀 눈에 보이지 않는 태안 해변 기름 제거를 위해 생물정화기법을 도입하기로 한 배경이다. 연간 1천만명 가까운 관광객이 오고 양식업 등 해양 이용이 활발한 태안에서 자연정화가 이뤄질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기 때문이다. 모랫속에 스며들거나 바위틈에 박혀 기름을 먹고 살며 환경복원을 앞당기는 수백만의 미생물 ‘눈에 보이지 않는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이 기대된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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