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 대통령 지시

김영곤 경영학박사 강남대 부동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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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도 주기적으로 항상 하듯이 아내와 장보러 할인마트에 들렀다. 계산을 하면서 확연히 느끼는 것은 물가가 작년에 비해서 엄청 올랐다는 것이다. 작년 중에는 비록 경기가 나쁘지만 두식구의 생활이기에 필요한 것들을 사면서도 생활비가 얼마되지 않는다고 느꼈었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부터는 물가가 꽤 오른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지금은 상당히 올랐다고 느끼게 되었다. 통계수치가 아닌 장바구니 물가이고 현장 물가 상황이다. 식구가 많은 가정들의 주부들은 부담이 엄청나겠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렇듯 일반 국민들에게 물가는 최근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대통령도 취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획재정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생필품 50개를 선정해 집중 관리하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로 물가상승은 심각한 지경이다. 물가가 가파르게 올라가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과거 70년대나 80년대식으로 대통령이 현장 확인형을 내세워 물가문제에 대한 세부적인 것까지 언급을 해야 하는 수준은 더 큰 문제가 아닐까.

과연 대통령의 지시로 올라가는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생필품 50개 품목에 대한 물가관리를 지시하고 관료들은 매우 신속하게 52개 품목을 선정하는 현상을 보면서 앞으로의 국정운영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대통령의 지시에 신속하게 대처했다는 것은 평소에 아주 준비를 잘했거나, 기존의 자료들을 들추어 상징적인 품목들을 가려서 제출했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전자라면 물가관리가 평소에 잘되어서 심각한 상황에 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므로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 대통령이 지시한 50개 품목의 50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나왔을까. 지시에 따라 정부가 발표한 52개 품목은 어떻게 선정되었을까. 선정기준은 발표를 했지만 선정된 품목들이 물가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치는 품목들 중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품목들로 선정했다면 선정기준 자체가 필요없는 것이다. 지시한 내용도 지시에 따라 선정 발표한 내용도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의 입장에서 물가 동향이나 불안정한 상황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경제 정책상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 사실 요즘과 같은 정보화, 글로벌화된 사회에서는 정부가 물가를 통제하거나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을 것이다. 관치경제가 극성이던 시대인 80년대에도 사용하기 힘들었던 가격관리를 시행하려는 것인지. 그러한 수단과 방법들을 지금 시대에는 시행할 수도 없고 한다고 해도 시장이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다.

기업친화, 시장친화를 내세우는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를 가지면서 원자재의존도가 극단적으로 높은 나라일수록 대외여건의 영향을 많이 받아 물가 조절은 힘들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해한다. 따라서 장바구니 물가만 안정되어도 정부는 선방했다고 할 수 있고 국민들도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정부가 물가를 억제하려는 생각이야 왜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물가에는 품목별로 원가의 문제가 대두되고 생산자인 대기업들은 원가절감을 하청업체인 중소기업에 전가하고 중소기업은 영세기업에 전가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어 설사 물가가 안정되었다 하더라도 저변의 희생은 무엇으로 보상되는지도 살펴야 할 것이다. 물가는 오른다고 하지만 음식물쓰레기가 줄었다는 말은 없다. 얼마 전에 시골 마을에서 반찬거리를 산적이 있다. 서울 및 수도권과는 엄청난 가격차이가 있었다. 항상 나오는 답은 유통구조 개선이다. 그러나 농축수산물의 획기적인 유통구조 개선을 통한 근본적인 체질개선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정말 현장 확인형의 행정인지 묻고 싶다.

밀가루가격이 올라가니 쌀을 활용할 수 없을까라는 제안은 이미 기업들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성 등의 문제로 대중화되지 않은 것이다. 기업이나 일반인들은 말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대통령이 이런 제안을 한다면 매우 신속하게 움직이는 관료들에 의해 그 여파가 어디로 튈지 불안하다. 지난 정권에서도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국민들을 얼마나 어렵게 했는지 벌써 잊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은 수퍼맨도, 천재도 아니다. 다만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목표 지향적으로 살아온 유능한 사람들 중에서 대통령이 선출된 것이다. 현장 물가는 수급에 의해 움직인다. 이를 관리하기 위하여 점검하고 계획, 실행하는 것은 관료들의 몫이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전력투구하는 것은 대통령의 몫이 아닐까.

김영곤 경영학박사 강남대 부동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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