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뮤지컬 ‘화이트 프로포즈’를 보고

달동네의 애환과 희망  관객과 함께 울고 웃어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엔 달나라 토끼가 절구를 찧는 줄 알았는데, 현재 대한민국은 우주인 이소연씨가 우주에서 지구 사진을 보내오고 있다. 달나라는 이미 사람이 다녀온지 한참이고 말이다. 과학 발달과 문명이 발전하는만큼 마음 속 예쁜 환상이 하나씩 사라져간다. 현실과 환상의 괴리는 볼수록 비참하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아직 주변에 남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뮤지컬 ‘화이트 프로포즈’를 만났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사)새중앙문화아카데미 가족극장 비전홀 무대에 오른 뮤지컬 ‘화이트 프로포즈’는 하늘과 맞닿은 달동네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다. 달동네 사람들의 인생은 대한민국 평균에 비해 힘겨워 보이지만, 무슨 이유인지 뮤지컬 해설자는 달동네 사람들에게 공주와 기사, 마법사, 궁중 요리사, 소년과 소녀 등 예쁜 애칭을 붙여준다. 동화 속 등장 인물들처럼 말이다. 이야기는 시작되고 등장 인물들의 비참한 속 사정을 알게 된다. 해설자가 부르는 애칭이 사랑스러운 만큼 그들의 삶은 더욱 슬프다.

욕쟁이 달동네 하숙집 할머니가 여왕님, 남편에게 버림받고 가난 때문에 하나뿐인 아들 만복이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하숙집 주방 아줌마가 궁중 요리사, 언젠가는 사장이 되겠다지만 당장 술에 빠져 사는 아저씨가 마법사다. 술집 여자를 짝사랑하는 중년 남성이 기사님, 그 남자의 마음을 알지만 상처받을까 두려워 새 삶을 시작하지 못하는 술집 여인이 공주님이다. 그 여인의 동생인 소녀는 시를 쓰는 소년을 사랑하지만, 당장은 허드렛 아르바이트나 하는 신세다. 시를 쓰는 소년도 소녀를 좋아하지만, 곧 군대에 입대해야 하는 대학생. 여기에 오디션에 계속 떨어지기만 하는 연예인 지망생 소녀가 한명 더 있다. 모두 하숙집 소고기 반찬 하나에 흥분하는 달동네 사람들이다.

힘겨운 삶이지만, 희망을 간직한 이들은 모두 조그만 행복을 갖고 있다. 주방 아줌마는 어서 돈을 모아 만복이와 살고 싶다는 꿈을 꾸고, 계속 시를 써서 문단에 오르겠다는 소년, 그런 대학생 소년처럼 공부해 대학에 가겠다는 소녀, 언젠가는 주인공이 되겠다는 연예인 지망생처럼 말이다. 그런 모습은 우리 일상이었고 익숙한만큼 삼류 소설이라 불린다. 하지만 삼류 소설이 계속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만큼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뮤지컬 속에 점점 동화되더니 거슬리던 어설픈 음향이나 정확하지 않은 대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라이브 피아노 소리 속 훈훈한 스토리만 남았다.

가족극장 비전홀은 안양 새중앙교회가 운영하는 공연공간이다. 기독교 관련 내용이 조금 가미되지만, 진하지 않아 비기독교인도 부담 없이 관람했다. 무엇보다 배우들 수준이 보통 이상이었다. 배우 모두 노래와 춤에서 수준급 실력을 선보인 덕분에 관객들이 뮤지컬 속에 충분히 동화됐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객석의 웃음과 박수가 진심에서 우러났다.

아쉬운 점은 일반 대형 공연공간에 비해 부족한 설비 때문인지 음향이 다소 어색한 순간들이 눈에 띄었고, 대사 전달이 잘 안되는 경우도 있었다. 종교성보다 전문성을 살린 공연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보다 공들인 세트와 음향으로 더욱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김효희기자 hhkim@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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