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훈 ‘매화는 추위에 향을 팔지 않는다’展 전통적인 수묵재료로 현대사회 부조리 담아
지금 눈 내리고/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저항시인 이육사의 대표작품 ‘광야’의 일부분이다. 매화는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짙은 향을 피우며 굳건히 계절의 순리를 따른다.
한국화가 성태훈(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이 매화를 화두로 전시를 연다. 전통적인 수묵재료를 기본으로 일상의 폭력과 전쟁, 테러 등으로 점철된 현대사회를 담아낸다.
끊임 없는 외세의 침략을 받은 한반도. 현재도 분단이란 상처를 몸소 겪고 있는 우리나라. 아름답고 고상한 작품을 떠나 성태훈은 폭력성에 저항하며 지고지순한 매화의 정신을 부여했다.
성태훈은 ‘매화는 추위에 향을 팔지 않는다’를 주제로 서울 갤러리영(18~24일)과 일산 롯데아트갤러리(26~다음달 8일)에서 각각 개인전을 연다.
전시될 작품들마다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가 등장한다. 여기에 속도감 넘치며 위협하는 전투기와 헬기 등이 여백을 채운다. 화면은 눈과 비바람을 연상시키는 무수한 점들과 사선으로 그어진 선들이 채워진다.
그러나 당당히 만개한 매화는 어떤 시련과 고통에서 의연한 기품을 잃지 않는다.
그는 작가노트를 통해 “위협적인 전투기들은 금방이라도 폭탄을 터트릴 듯한 태세를 취하고 있다. 정적인 동양화 위에 표현될 수 있는 극도의 위태로운 상황. 그러나 매화는 온갖 시름과 고통을 뚫고 오랜 기다림 끝에 혼신을 다해 아름다움으로 피어 오른다”고 밝혔다.
그동안 작가는 식물들과 사군자를 응용해 평화로운 동양화 위에 두려움과 불안의 심상들을 개입시켜 혼탁한 현 시대를 은유했다. 현실을 목도한 작가는 일상을 위협하는 폭력의 부당성에 적극 개입한다. 말 없이 꽃을 피우는 매화의 당당함은 작가 자신의 분신인 줄도 모른다.
/이형복기자 bo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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