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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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은 하느님의 질책을 받자 도망자로 방랑하다가 도시를 만들었다. 동생 아벨을 살해한 부도덕한 인간이 지도자가 된 것부터가 문제였다.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난 후 도망자 신세를 자초한 카인의 후예들이 모인 사회는 범죄자로 들끓게 돼 있었다. 지도자조차 부도덕한 사회에서 올바름과 그름을 가린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도덕적이지 못한 지도자에겐 그에게 아부함으로써 권력과 영광을 추구하는 무리가 들끓기 마련이다. 인간이 에덴을 떠난 이후 세상은 원래부터 그렇게 되게끔 돼 있었다. 다윗조차도 밧세바를 탐하여 그녀의 남편인 우리아를 전쟁터로 내몰아 죽게 하였다. 부도덕한 사욕을 채우기 위해 권력을 행사했다. 그렇다고 곧은 말 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예언자 나단이 이를 꾸짖었으며, 이에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였다. 히브리민족의 역사에는 정치권력 행사의 부당성을 나무라는 종교 지도자가 있었다.

원래 정의롭지 못하게 돼 있는 지상의 도시에서 정의를 확립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의 없이는 인간 사회가 존속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시국가가 존속하려면 물질적으로 자급자족하여야 하며, 정의의 감각이 있어야 된다고 갈파했다. 정의가 행하여지려면 무엇보다 권력을 행사하는 지도자의 행위에서 정의가 나타나야 한다.

알렌산더 대왕이 인도양에서 해적을 잡아서 문초했다. 해적 두목이 무슨 권리로 남의 물건을 약탈하는지를 물었다. 해적 두목은 “대왕과 똑같은 권리를 갖고 약탈을 하고 있는데, 단지 차이는 대왕은 거대한 군단으로 약탈하고 있는 것이며, 나는 재수없게 대왕에게 잡힌 것 뿐”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알렉산더 대왕과 해적 두목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사기와 폭력에서 정치적인 변동이 일어나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경계하였다.

공자는 정(政)을 정(正)이라고 하였다. 국민 사이의 편을 가르지 말아야 한다. 카인은 신이나 부모가 아벨을 편애한다고 생각하여 동생을 죽였을는지도 모른다. 지도자를 믿으려고 하지 않는 국민에게 억지로 믿게 할 재간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에게도 없다. 중요한 것은 지도자가 개인적으로도 도덕성을 갖추어야 하는 일이다. 인류가 에덴에서의 삶을 희구하는 이유는 그 곳이 가장 도덕적이기 때문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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