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프랑스 애니메이션 영화인 '페르세폴리스'는 그래픽 소설가인 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 성장 소설을 바탕으로 삼았다.
이란 출신으로 10대에 유럽으로 옮겨온 사트라피는 어린 시절 겪은 이란 혁명기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동명의 그래픽 소설을 펴내 인기를 얻었다. 이어 이 소설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하고 뱅상 파르노 감독과 함께 공동 연출을 맡았다.
한때 페르시아 문명이 찬란하게 꽃피었던 이란의 페르세폴리스. 정의로운 부모와 지혜로운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난 마르잔은 리샤오룽(李小龍)에 심취해 있는 말괄량이 소녀다. 마르잔 집안 어른들은 다소 진보적인 성향으로 독재 왕정이 무너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슬람 혁명이 왕정은 끝내지만 이란 사회는 점점 이슬람 근본주의로 기울어 간다. 마르잔이 영웅시하는 삼촌은 무고하게 감옥에 끌려가 세상을 떠나고 마르잔은 이로 인해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슬픔의 의미를 깨닫는다.
이어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며 전쟁이 터진다. 세상은 더욱 흉흉해지고 마트의 진열대가 텅텅 비면서 인심은 메말라 간다. 여자는 차도르로 얼굴을 꽁꽁 동여매고 다니지 않으면 음란한 여자로 취급받다. 이런 사회에서 펑크 록과 서양 문물에 심취해 있고 성격마저 당돌한 10대의 마르잔은 곤경에 빠지기 일쑤다.
마침내 부모님은 마르잔을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보낸다. 마르잔은 빈에서 술과 담배, 남자를 먼저 알게 된다. 백인 사회와 자신 사이에 놓인 유리벽에 부딪힌 마르잔은 지독한 향수병과 첫사랑의 실패로 인한 허무감에 빠져 방황한다.
영화는 책으로 한번 읽고서는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이란의 현대사를 주인공 마르잔의 일상을 통해 연차 순으로 보여준다. 시대의 질곡은 곧바로 평범한 소녀의 깊은 상처로 이어지고 관객의 공감을 쉽게 이끌어낸다.
자전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답게 이 영화는 혼란스럽고 음울한 시대 자체보다는 사회의 그늘에 가린 소녀의 고통스럽고 숨가쁜 성장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이 과정에서 눈물과 고뇌를 그리는 동시에 유머와 인간적인 정을 잃지 않는다는 점도 이 영화의 큰 장점이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섣불리 해피엔딩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삶과 성장은 계속된다는 명백한 주제만 되새길 뿐이다.
사트라피와 파로노 감독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전통적인 수작업을 택했다. 이런 흑백 2D 애니메이션 기법은 복잡한 이란 현대사와 한 소녀의 성장을 모두 담아내는데 가장 적합한 그릇으로 보인다.
영화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처럼 단번에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색채와 기교보다는 풍부한 상상력과 품위를 보여 준다. 값비싼 기성복이라기 보다는 우아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오트 쿠튀르에 가깝다.
목소리 연기에는 카트린 드뇌브, 다니엘 다리유, 키아라 마스트로얀니 등 여러 세대의 프랑스 인기 여배우들이 참여했다. 이 영화는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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