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有感

“아버지 없이 낳은 자식이 있나!?” 대체로 아버지들의 이런 정서랄까, 1973년에 시작된 어버이날 제정의 배경이 그랬다. 1956년부터 5월8일을 어머니날로 해오던 게 어버이날이 됐다. 정부의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이 고쳐졌다.

어버이날은 그래도 어머니날 성향이 짙다. 역시 자식을 낳고 기른 정은 아버지보단 어머니쪽이 더 한다. “평생 처자식을 위해 뼛골 빠지게 일한다”는 아버지들의 항변이 있긴 있다. 그러나 공허하다. 아버지만이 아니고 어머니도 돈을 벌기도 하지만, 설사 어머니가 돈을 안 벌어도 아버지의 벌이에는 어머니의 내조의 기여가 인정되는 세상이다.

서구사회 역시 부모를 기리는 날이 있다. 유럽에서는 통상 5월의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한다. 그러나 어머니날이 더 활발한 것은 미국이다. 1914년 윌슨 대통령이 5월의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공인, 선포함으로써 활성화됐다. 유럽에선 민속으로 행해졌던 어머니날이 미국에서는 정부가 정한 공식 행사가 되었다.

이에 앞서 1913년엔 필라델피아교회가 어머니날을 주창하고, 또 이에 앞서서는 1908년 ‘저비즈’라는 처녀가 잃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머니날 제정을 위한 캠페인을 벌인 것이 단초다.

어머니가 생존해 있는 자녀는 빨간 카네이션을, 어머니가 없는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자신의 가슴에 달고 어머니의 은혜를 기린다. 국내에서는 살아계신 부모에게 빨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드린다. 수원 영복여고 학생들은 카네이션 대신에 나라꽃인 무궁화 달아드리기 운동을 해마다 벌이고 있다.

어머니날 보다 역사는 좀 짧지만 아버지날도 있다. 6월 셋째 일요일이 그 날이다. 1910년 미국 워싱턴주 스포캔이라는 데서 시작됐다. ‘브루스’ 부인 등 오누이 자매들이 아버지가 어머니 없이 혼자 자기들을 키워준 은혜에 감사하는 행사를 가진 것이 효시다. 처음엔 각 주마다 아버지날의 날짜가 달랐던 것이 점차 6월 셋째 일요일로 조정됐다. 1936년 뉴욕에서 ‘전 미국 아버지날 위원회’가 조직되면서 본격화 됐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기리는 우리의 어버이날은 미국사회의 어머니날, 아버지날 보다 연륜이 짧다. 어버이날의 모태인 어머니날로 쳐도 짧다. 그러나 경로효친 사상은 그들과 비할 바 없이 역사가 훨씬 길다. 경로효친은 자고로 곧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지금도 인륜의 기본 대사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의 경로효친은 형태가 다르다. 뿌리는 같지만 겉모양은 전 같지 않다.

이런 일이 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6·25의 참상속에 겪은 먹거리 고생담을 한참동안 들려주었다. 다 듣고난 아들은 말했다. “왜,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거죠? 지금은 그때와 다른 세상인데요!” 그 아버지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생일에 큰 맘먹고 전화를 했다. “기념으로 뭘 해주련? 솔직히 말해도 된다” “어머님, 정말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죠?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날 우리 집에 안 오시면 좋겠어요. 스캐줄이 있거든요!” 시어머니는 맥없이 수화기를 놨다. 결혼한 아들 내외에게 부모가 아기를 기다리자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까 신경쓰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손주는 자녀를 낳는 저희들만의 인생인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인생이기도 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착한 젊은이들이 참 많다. 세태가 달라졌을 뿐이다. 세대차이의 갈등은 인류 창조 이래 거듭되어온 숙명이다. 그같은 갈등속에서 인류는 발전했다. 그러나 현 세대간은 특이하다.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발달된 정보화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인류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신종 세대차이다.

어버이날을 맞아 생각해본다. 오늘도 아들 딸이 달아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부모들을 볼 수가 있다. 자식이 부모를 그리워하여 부모에게 꽃을 달아주는 것과, 부모가 그리워 자식이 자신의 가슴에 꽃을 다는 문화의 차이가 뭣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어버이날을 같이하는 부부의 해로는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임양은 주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