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씨 나락을 까먹어선 안되는 이유

윤한택 기전문화연구원 전통문화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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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우리 말 중에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말이 있다.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 터무니없는 말, 말이 안 되는 소리,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정도의 뜻으로 새길 수 있다.

이 말은 어디서 왔을까? 먼저 씨 나락을 까먹어선 안 된다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아는 체 해 보자. 우이 선생이 관계론의 교과서라고 부르는 주역을 해설하면서 가장 어려운 상황을 나타내는 절망의 괘로서 ‘산지박(山地剝)’을 소개하고 있다. 세상이 온통 악으로 넘치고 단 한 개의 양효만이 남아 있는 상태인데, 이마저도 언제 음효로 전락할 지 알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나 곧 이어, 그 절망은 곧 희망의 기회임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상구(上九)의 효사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의미를 새긴다.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이다. 왕필은 주에서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로 읽는다. 씨 과실이 결코 먹히지 않듯이 씨 나락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 누구에게도 먹힐 수 없으므로 우리 조상들은 실체가 없는 귀신을 핑계 대었을 법하다. 그렇게 터무니없게….

한 발 더 나가보자. 씨 과실, 씨 나락, 씨 암탉에서 씨는 눈에 보이는 유형의 것의 근원이고,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의 상징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무형과 유형은 빛의 양면인 파동과 입자를 이루어 천지를 가득 메우고 만물을 생성시켜 기르는 것이다. 어찌 서로 먹고 먹힐 수 있겠는가? 과학적으로 생각해봐도.

씨는 종자이다. 씨 나락, 씨 암탉은 곡물 종자, 가축(가금) 종자에 해당한다. 인류가 원시공동체로부터 문명을 일군 계급사회 최초의 생산수단이 바로 이것이었다. 바이블을 비롯한 고대의 역사 기록이 부의 기준으로 양, 소, 말 등의 가축을 적시하고 있다. 가축의 영어 표현인 캐틀(cattle)이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산수단인 자본(capital)의 어원이다.

우리가 껄쩍지근한 공기를 느낄 때 우스개로 ‘가축적인 분위기’라고 한다. 그 음사인 ‘가족적인 분위기’라 할 때 가족의 영어 표현인 family의 라틴어 어원이 요새 유행하는 주택회사 상표인 familie이다. 그 뜻은 이중적인데, 가족이면서 동시에 노예였다. 가부장제 아래서는 여자는 새끼 치는 도구이고, 그 새끼인 자식은 이자(利子)이며, 그것을 축적하는 것이 재산이었다.

양치기 다윗은 그러므로 부의 생산수단인 양을 소유하지 못했으므로 그것을 기르는 노동력을 제공하여 새끼를 치고 그것을 그 소유자에게 바치는 노예였던 셈이다. 이자는 이(利)는 파자하면 벼(禾)를 칼로 베는(刀) 것이고, 자(子)는 그 새끼이다. 따라서 곡물 종자의 새끼이다. 즉 고대에서의 지배적 생산수단인 곡물의 종자를 소유하지 못한 자가 그의 노동력을 제공하여 수확을 내고, 그 새끼를 이자의 형태로 바치는 것이다. 인류 최초의 잉여가치 형태이다.

씨 나락을 까먹는 것은 생명의 젖줄을 끊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부의 축적수단을 고갈시키는 것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귀신은 참으로 편리한 존재다. 공자가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 했던 말이 어쩌면 이해될 법도 하다. 인정하고 이해하되 동의하진 말라는 것일 터이다. 또 결국 귀신이 씨 나락 까먹는 소리만 늘어놓은 기분이다.

윤한택 기전문화연구원 전통문화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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