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방역법상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이 확인된 지역 반경 3㎞ 이내의 모든 가금류(家禽類)는 살처분을 의무화하고 있다. 유전적 가치가 뛰어난 시험 가축과 종계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그래서 지금 충남 천안시 성환읍에 위치한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 가금과는 초비상 사태다. <본보 5월 17일자 4면> 15년의 연구 끝에 복원한 천연기념물 오골계와 조상들이 물려준 토종 재래닭, 청둥오리 등이 축산과학원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AI가 발생한 천안시 직산읍의 오리 사육장과 축산과학원 가금과가 위치한 천안시 성환읍과의 직선 거리는 4,5㎞에 불과하다. 만일 1.5㎞만 더 근접하면 가금과가 사육 중인 1만1천여 마리의 재래닭과 청둥오리도 살처분의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축산과학원은 일단 최근 DNA 확인 작업을 거쳐 복원을 마친 토종 재래닭 3종을 포함한 9종의 재래닭 900마리를 지난달 10일 수원 오목천동 축산과학원 축산생명환경부로 옮겼다. 16일엔 청둥오리 종란 600개도 수원으로 옮기고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AI가 진정되지 않아 23일엔 토종 재래닭 9종 560마리와 종란 1080개를 주변에 가금류를 거의 키우지 않는 청정지역인 강원도 대관령 한우시험장으로 옮겼다.
우수유전자원의 안전지대 이동과 함께 혈청검사, 자체 방역 작업도 강화했다. 일단 모든 차량의 성환 축산자원개발부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으며 가금연구동의 경우 사람의 진입까지 완전히 금지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가금과 연구원 13명도 출입이 통제돼 10여일이 넘도록 퇴근을 하지 못한 채 3만㎡의 가금종합연구동에서 일과 숙식을 병행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성환 지역은 평택과 안성 등 AI가 확인된 경기남부와도 인접한 곳이어서 연구원들은 자신의 출퇴근이 AI를 전파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따라 ‘감금 생활’을 감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남녀 연구원 모두가 엄격한 통제와 방역으로 속옷 조차 제때 갈아 입지 못하는 딱한 실정이다.
그러나 AI로부터 토종닭과 우수한 가금류 종자를 지켜낸다는 신념은 대단하다. 가금류를 마치 사람의 목숨처럼 보호하고 있는 축산과학원 가금과 연구원들의 정성이 눈물겹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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