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임금은 화성을 축성하면서 동서남북으로 네 곳에 저수지를 축조했다. 동쪽은 지동에 팠다. ‘못골’이란 속명이 생긴 유래다. 못은 근세들어 시가지화하면서 농업용수의 기능을 다해 미나리깡으로 유명했다. 이젠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서쪽에 축조한 것이 서둔동의 축만제, 즉 서호다. 남쪽은 사도세자 묘역인 현륭원 앞 만년제다. 북쪽으로는 송죽동에 축조한 만석거(萬石渠)다.
만석거는 1795년(정조 19년) 축조됐다. 정조 임금은 화성 축성과 함께 설치한 장용위 장졸 급료 등 화성행궁 운영비로 충당키 위한 둔전에 물을 대려고 이같은 저수지를 만들었다.
지금의 만석공원 호수가 곧 만석거다. 지지대 고개를 넘어 노송지대를 지나는 길가에 있다. 정조 임금이 능행차 때 늘 다니시던 길목인 것이다.
광교산 줄기의 광교천 물을 담수한 만석거의 원래 규모는 여러가지로 알려져 분명치 않다. 그러나 ‘만석거로 인해 대유평의 척박한 땅이 옥답이 됐다’는 기록으로 보아 꽤 컸던 것 같다. 대유평은 장안문 밖 일원의 들판을 말한다.
만석거는 대유평이 거의 도시화되고도 1990년대 초반까지는 농업용수의 명맥을 유지했다. 당시 화성농지개량조합에서 관리했던 만석거 규모는 길이 387m·높이 4.8m·평균수심 1.8m·저수면적 24.7㏊에 몽리면적은 82.2㏊이다. 그러나 이는 당초의 만석거 보다 많이 작아진 것이다. 이어 약 10년전 만석공원을 조성하면서는 농업용수의 소임을 다 마쳤으므로 공원 면적을 넓히기 위해 절반 넘게 매립했다.
수원은 농업의 메카로 알려진 농업의 고장이다. 정부기구인 농촌진흥청이 수원에 있고,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이 수원에 있었던 연유가 이 때문이다. 또 이엔 정조 임금이 만석거 조성 등 농업 개발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역사적 배경이 효시다.
수원시 장안구청이 오는 30~31일 이틀 동안에 유서깊은 만석공원에서 ‘제1회 만석거축제’를 갖는다. 정조 임금의 농정 혁신과 애민정신을 기리면서 대동제 등 옛 전래행사를 재연, 애향심을 드높인다는 것이다. 이번 주말의 만석공원이 기대된다./임양은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