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특사

한비자(韓非子) ‘난이편’(難二篇)에 전한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술을 마시다가 취하여 관을 잃었다. 부끄러이 여겨 사흘동안 조회에 나오지 아니했다.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마침내 백성들을 위무했다.

창고를 열어 가난한 사람에게 양곡을 주고, 옥에 갇힌 죄수 중 죄가 가벼운 사람들을 방면했다. 환공은 이로써 자신의 부끄러움을 씻었다고 믿었다. 제나라 조정 신료들도 백성을 위해 잘 한 일이라고 환공을 칭송했다.

그러나 한비자는 혹평했다. “소인들에게는 환공의 치욕을 씻어주었을지라도, 군자들에게는 의로움을 잃은 치욕을 더해주었다”고 말했다. 곡식을 나눠 준 것은 공이 없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죄수를 방면한 것은 죄과를 처벌하지 않은 것이므로 일이 이렇게 되면 백성들은 요행을 바란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아 민생사범을 대거 특사했다. 역대 대통령의 특사가 많았지만 취임 100일 특사는 또 보다가도 처음 본다. 어떻든 정치범이나 경제범이 아닌 민생사범 특사의 뜻은 짐작된다. 인심도 얻고 생계에도 도움을 주자는 요량일 것이다.

그런데 이에 생각나는 것이 앞서 밝힌 한비자의 말이다. 가령 차 운전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이 특사로 풀려나 다시 생업으로 돌아가는 것은 인정상 나쁘다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죄과를 제대로 치르지 않는 특사 선심은 법 집행을 어지럽혀 교통질서를 문란케하는 사회적 위해 요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전례없는 100일 특사는 전례없는 특별 선심으로 100일의 의미가 뭣이냐를 생각케 한다. 공직 취임에 흔히 100일을 말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긴 했으나, 각별한 의미가 없는 관료적 관념일 뿐이다.

그때 제나라 백성은 환공에게 이렇게 말했다. “임금님이시여! 어찌하여 관을 다시 잃어버리시지 않나이까?!”라고 노래를 부른 것은 환공의 선심이 있은지 불과 사흘만이다. 100일 특사에 이어 200일 특사는 설마 없겠지만, 취임 1주년 특사가 있을 것 같으면 이도 특사권 남용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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