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감정의 ‘덫’

엊그제 밤이다. 서울 세종로 일대를 뒤덮은 비폭력 촛불인파, 촛불의 물결은 가히 외경스러웠다. 사람들, 사람들, 그들의 물결은 조용하면서도 강한 힘을 보였다. 이들의 길을 막은 컨테이너 바리케이트는 흉물이다.

꼭 쇠고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다는 아니다. 살기가 어렵고, 세상사가 온통 화난 일만 생겨 촛불을 든 사람도 있고, 이명박(대통령)이 하는 짓이 미덥지 못해 촛불을 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떻든 촛불정서의 저변을 한 마디로 집약하면 반미감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용미의 입장이다. 이렇긴 해도 반미주의자는 용미도 친미주의로 몰아댄다. 굳이 그러는 덴 또 악다구니를 써가며 아니라고 할 마음은 없다. 반미감정은 세계적 추세다. 영국이나 프랑스에도 반미주의가 있다.

유럽의 반미주의는 세계질서 관리의 주도권 다툼이다. 중동의 반미주의는 이스라엘에 치우친 미국의 편향정책에 기인한다. 동북아시아는 대미 안보관계와 관련된 불만이다. 제3세계는 세계질서 및 세계경제의 미국 의존에 관한 우려다. 이래서 나온 게 반세계화다. 미국내에서도 힘의 논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 예컨대 테러 확대의 재생산이 힘의 논리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반미에는 좀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 예를 들면 부시의 독선주의가 한국의 국민감정을 자극할 때가 적지않다. 이런 것은 순수한 정서적 반미감정이다. 특이한 것은 이런 정서적 반미감정이 아닌, 의도된 이념적 반미감정이다.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지정학적 현실은 ‘반미’에 따로 붙은 숙어가 있다. ‘친북반미’다. 친북 자체는 부정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동포애가 아닌 이념적 동조의 친북이다. 사례를 든다. “만경대정신 이어받자”는 대학 교수가 있다. 이의 ‘친북반미’를 두둔하는 반미주의는 의도된 이념적 반미주의다. 이들은 이쪽 정부가 하는 일은 사사건건 헐뜯으면서 평양정권이 인민들 배곯이는 것은 관대하게 치부한다.

미국 쇠고기 수입개방은 미국에 자동차 등을 더 팔아먹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추세다. 이렇긴 하나, 이명박이 부시 만나러 가서 30개월이상 월령소 수입금지, 검역주권 등의 확실한 확립없이 덜렁 문을 열어준 것은 경솔했다. 미국 소가 당장 광우병에 걸린 게 아니고 광우병은 유럽이 원조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못한 것은 잘못이다. 국민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시민들이 들고 나선 정서적 반미감정은 이해가 된다. 이명박은 더욱이 처음부터 일을 화끈하게 매듭짓지 못하고 갈팡질팡한 가운데 땜질에 급급하다가 사태를 악화시켰다.

재협상은 물론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주지만 민중의 요구다. 그런데 하라는 데도 안 하고 잘못했던 문제 해결만 추진 하고 있다. 인적쇄신 요구에도 비서실 수석진과 내각 각료의 사표를 선별 수리할 모양이다. 재협상 요구와 수석진, 내각 총사퇴 요구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젠 지켜보는 것이 순리다. 앞으로 헌법재판소에서 판결할 미국 쇠고기수입 장관고시 위헌청구의 헌법소원도 계류돼 있다.

비폭력 촛불시위가 혁명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마땅히 헌정질서가 존중돼야 한다. 이는 정서적 반미감정의 충정이다.

반면에 무조건 반대로 일관, 폭력적 촛불시위 유발을 거친 혁명단계를 바라는 요량 같으면 헌정질서를 무시할 것이다. 이는 이념적 반미감정이다.

하나, 분명한 것이 있다. 친미든 반미든 한·미 교역은 상호 이해관계라는 사실이다. 국제사회의 이해관계는 친·불친과는 무관한 별개의 사안이다.

민주주의 발상지인 영국에는 아직도 귀족제도가 있다. 귀족제도가 있다고 해서 영국을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가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미국은 독립선언문에서 자유와 인권을 표방했다. 자유와 인권을 말하면서 노예를 해방시킨 것은 건국 87년만의 일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자본주의 발달로 치닫는다. 마오쩌둥(毛澤東)의 혁명사상과 상충된다. 그래도 마오를 국부로 받든다.

자고로 어느 국가사회든 언제나 모순은 존재한다. 모순에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것이 역사 발전의 연속적 과정이다. 쇠고기 파동 역시 이 범주의 갈등이다. 당장 살기위해 고민해야 할 일은 쇠고기 보다 더 급한 게 많다. 고유가는 그중 하나다. 정부가 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국민사회는 정부를 부려야 한다. 일을 하도록 해줘야 한다.

주장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주장이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므로, 정부와 결사투쟁하겠다는 것은 혁명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다. 헌정질서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순수한 정서적 반미감정의 촛불시위가 의도된 이념적 반미감정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민중의 현명함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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