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와 박테리아

윤한택 기전문화재연구원 전통문화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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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라든 인문사회과학의 시야를 확장해보려고 자연과학 책을 이것저것 뒤지다가 요즈음 들어 적색의 대안으로 떠오른 지 이미 오래인 녹색 생명, 생태 관련 기초 용어에 새삼 눈이 간다. 그 재미있는 것 중에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있다.

바이러스는 자기를 증식하기만 하는 물질이고, 박테리아는 물질대사 능력을 가진 최초의 생명체라고 설명해 놓고 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음직하나, 지난 20세기를 물질에 갇혀 살아온 우리로서는 이 무기물과 유기물 사이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타고 넘는 그 틈에 마음이 개운치 않다.

게다가 중딩이·고딩이의 촛불 세례에 자존심까지 넘겨 준 늑다리의 심술까지 은근히 발동한다. 사람이 나이 드는 징조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볼 때 가장 특징적인 것은 먼저 의심이 많아진다는 것, 다음으로 단순 무식해진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아닌가 싶다. 전자는 바로 그 노파심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이른바 노망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니, 노파심, 노망이라 바꿔 개념화하니 더욱 그럴 듯도 싶어진다.

오늘은 이 바이러스, 박테리아를 물고 늘어지면서 그 노파심과 노망을 한껏 발휘하여 정말 아주 늙어버린 것인지 자기점검을 해보기로 하자.

먼저 박테리아가 최초의 생명체이므로 그보다 훨씬 단순한 바이러스는 생명체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래서 여기저기 다른 참고 자료들을 뒤적이다보니 역시 그 부분이 논쟁거리가 됨을 알겠다.

물질대사를 통해 에너지를 만드는 생산 활동을 하지 않지만, 자기 유전자를 가지고 닮은꼴을 만들어가는 생식 행위를 하므로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이러스를 생명체라고 주장하는 논자는 이것이 스스로 증식할 수 없고 숙주인 박테리아를 통하여 증식하면서 숙주를 파괴하므로, 이른바 그 관계를 기생자와 숙주로 처리하고 있다.

또 다시 의심이 고개를 든다. 생식행위자는 기생자이고 생산 활동자는 숙주라고? 이건 너무 생명 현상 위주로만 해석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둘의 관계는 수평적인 쌍방 생식행위자, 이른바 암컷과 수컷, 음과 양의 관계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바이러스는 라틴어로 비루스에서 왔는데, 그 뜻은 독이라 한다. 우연히도 철자로 보아 미를 의미하는 비너스에도 가깝다. 한편 박테리아는 에너지의 축적자인 배터리를 연상시킨다. 이 둘은 러므로 기생관계가 아니라 쌍방이 서로 필요로 하는 수평적 상생관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생식은 희생을 동반한다. 상생의 원리는 이렇게 다시 정의될 필요가 있다.

물질대사를 수행하는 박테리아를 생산자로 규정하는 것도 의심스럽다. 에너지원을 가지고 있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볼 때 오히려 그가 기생자, 수탈자이고, 반대로 자연이 생산자, 기여자가 된다. 자연과 생물의 관계야말로 수직적인 생산자와 기생자, 기여자와 수탈자의 관계에 다름 아니다. 생산은 수탈을 동반한다. 이것이 기생의 원리이다.

노파심과 노망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우주 삼라만상의 움직임이 이러한 기생과 상생의 원리로 다시 탄생한다. 그런 힘은 한 생명체의 일생에서 생식행위가 쇠잔해지고 생산 활동이 하강곡선을 그리는 시기에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 기울이는 최선의 노력인 과학적 낙관주의에서 발현된 것이 아닌가 부질없이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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