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墨子)는 중국 춘추시대 지금의 산동성인 노(魯)나라 철학자다. 당시 번창했던 제자백가의 하나인 묵가(墨家)의 시조다. 전쟁을 거부하는 데 앞장섰던 비전론주의자다.
초(楚)나라가 성을 공성하는 신무기로 운제(雲梯)를 만들어 송(宋)나라를 공격한다는 말을 듣고 열흘 낮밤을 달려 초나라 도읍인 지금의 호북성 홍남성에 이르렀다.
초나라 왕과 그 신하들에게 전쟁을 적극 만류했다. 초나라 사람이 운제로 성을 공격하고 묵가가 성안에서 공격을 막는 시뮬레이션을 갖기도 했다. 운제로 성을 아홉 번이나 공격했으나 아홉 번을 다 막아냈다. 묵자의 수비는 그러고도 여유가 있었다.
묵자는 초나라 왕에게 이렇게 또 말했다. “초나라는 여유있는 땅을 가지고 있으나 백성들은 가난한 처지입니다. 가난한 백성들을 군사로 죽여가면서 굳이 안 그래도 여유있는 땅을 탐한다는 것은 인의로운 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마침내 초나라 왕은 송나라 침략을 묵자의 말을 들어 포기했다. ‘묵자 공수편’에서 전한다.
묵자는 사상가이면서 사상의 실천가였다. 자신의 비전론을 관철키위해 만리길을 달려 초나라에 간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저서 ‘묵자’에는 ‘비성문 편’등 열한 편에 이르는 전문적 병법도 기록돼 있다. 이론만이 아닌 실력으로 비전론을 실현키위해 병법을 깊이 연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초나라 왕을 설복하고 노나라로 돌아갈 때다. 마침 송나라를 거치는 데 어느 마을밖 어귀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묵자는 마을 안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려 하였다. 그러나 마을 어귀에서 문을 지키는 사람이 묵자를 수상히 여겨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묵자는 고스란히 비를 맞아야 했다. 송나라의 전란위험을 구해준 은인인 데도 그 나라 사람들은 이를 몰라봤다. 묵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런데서 의로움을 행하려는 사람들도 의기를 잃기 쉽다. 그러기에 위대한 일을 하려는 사람은 더욱 철저한 신념이 필요한 것이다”라고 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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