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승전보 ‘되새김’¶¶정치를 말하자면 욕설이 먼저 나온다. 경제를 생각하면 물가고가 어깨를 짖누른다. 날씨는 막판 더위가 대단하다.
그런데 이런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게 있다. 찜통 더위속에 열기가 더하는 제29회 베이징올림픽 소식이 국민의 마음을 달래준다. 전에는 올림픽 금맥이 초반엔 좀처럼 터지지 않았던 것이, 이번에는 개회식 이튿날부터 날마다 금을 비롯한 메달행진이 이어진다.
그러나 우릴 기쁘게 해준 그들의 선수생활 이면엔 사연이 많다. 한 때의 좌절을 이겨낸 의지의 눈물이 고여있기도 한다. 남자 유도60㎏급 첫 금을 안겨준 최민호는 한판승을 무려 내리 다섯번이나 연거푸 거듭했다. 경기를 텔레비전 중계로 지켜본 우린 후련했으나, 그것은 자신에 대한 한맺힌 시험이었다. 그의 시험은 한동안 소주로 소일했던 실의의 세월을 털어낸 강행군 끝에 마침내 스물아홉 늦깎이로 화려하게 부활해 보였다.
손톱에 가시만 끼어도 손놀림이 거북하다. 갈비뼈에 금만 가도 숨을 크게 쉬면 탁탁 막힌다. 남자 유도81㎏급에서 은메달을 쥔 왕기춘의 경기후 진단결과는 전치 6개월이 요하는 중상의 몸이었다. 8강전에서 상대 선수가 몸싸움으로 뿌리친 팔꿈치에 맞아 열번째 갈비뼈가 다치면서 연골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세상에 그 몸으로 8강전, 4강전, 준결승전을 이기고 결승에 올랐던 것이다. 초인적 사나이 왕기춘에겐 미래가 있다. 이제 스무살이다. 용인대 학생인 것이 자랑스럽다.
양궁 여자단체전(윤옥희·박성현·주현정) 6연패는 세계 양궁사상 불멸의 신화다. 남자단체전 3연패 또한 위업이지만, 6연패의 아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이 때문에 경기에 앞서 부담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남들은 우승을 따놓은 당상으로 알지만 정작 본인들은 긴장의 연속이다.
게임은 언제나 이변이 있다. 더욱이 양궁은 단 1점을 다툰다. 이리하여 10점 과녁을 꼭 꿰뚫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담력이다. 침착성을 잃지 않은 양궁 여자단체전의 고득점 순항은 담력훈련의 소산이다. 뱀을 호주머니에 담기도 하고, 밤중에 혼자 공동묘지를 다녀오도록 하는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담력을 키웠다.
아름다운 투혼은 메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메달에도 아름다운 투혼이 있다. 아테네올림픽의 은메달리스트 이배영은 남자 역도69㎏에서 이번엔 금메달을 향한 출발이 좋았다. 그러나 경기도중 쥐가 났다. 이게 경기의 가변성이다. 오른쪽 장단지에 갑자기 생긴 근육통이 멈추지 않고 더 심해지자 바늘로 마구 찔러대가며 2,3차 시기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관중에서 그의 투혼에 박수가 쏟아졌다.
‘우생순’의 화신,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아줌마 선수가 세명이나 낀 노장부대다. 하지만 기량은 한층 더 노련하고 투혼은 더욱 빛을 뿜는다. 아줌마 선수는 외국 선수들 중에도 있다. 여자 펜싱 플뢰레 결승에서 우리의 남현희에게 고전끝에 신승한 이탈리아의 발렌티나 베찰리는 서른한 살의 주부로 세 살짜리 아들이 있다. 수영 여자 400m계영에서 은메달을 딴 미국의 다라 토레스는 마흔한 살이다. “수영장 물은 선수의 나이를 알지 못한다”는 말을 했다.
사격의 남자 50m권총에서 우승한 진종오는 준우승한 북측 김정수와 국제대회에서 자주 만나는 사이다. “고저 악을 쓰고서라도 금메달을 따려고한, 자체 말고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습니네다” 김정수의 경기후 소감이다. 진종오는 “정수 형은 실력도 좋고 존경하는 선수여서 형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둘은 서른한 살, 스물아홉으로 김정수가 진종오보다 두 살 위다.
베이징올림픽의 최대 파란은 수영 남자 자유형400m에서 일어난 박태환의 반란이다. 이의 금메달에 이어 200m에서는 은메달을 추가, 서양인 독무대를 깬 동양의 다크호스 출현으로 세계 수영의 역사가 달라졌다.
“해켓(호주) 선수는 관록이 있고 세계적인 선수여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은 박태환이 400m 출전에 앞서 했던 말이다. 해켓 또한 “박태환은 지구력이 좋은 선수”라고 화답한 건 역시 스타다운 스포츠맨십이다. 자유형200m에서 은메달을 딴 박태환은 “은메달도 과분하다. 펠프스(미국)와 레이스를 펼친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며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마이클 펠프스는 세계 수영의 ‘황제’인 것이다. 펠프스도 “박태환은 후반에 강해 50m를 남겨놓고 신경이 쓰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베이징올림피아드에서 들려오는 좌절극복, 중상투혼, 담력훈련, 노익장의 선전, 남북선수의 우정, 경쟁자를 칭찬할 줄 아는 스포츠정신 등이 무척 아름답다. 시름과 더위에 찌든 짜증을 잊게 해준다. 올림픽은 이제 중반들어 중반과 종반을 남겨놓고 있다. 앞으로의 소식이 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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