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말 국내 거주 탈북자는 1만2천248명, 올 6월 말엔 1만4천명에 이른다. 1999년 148명을 기록해 처음으로 100명을 넘어선 후 2002년엔 1천명을, 2006년에는 2천명을 넘기는 등 매년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탈북자 수 급증은 이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 관리 부실로 이어져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남파 간첩으로 체포된 원정화도 2005년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탈북자 교육시설인 용인시 하나원에서 8주 동안 사회적응교육을 받았다. 하나원 동기 및 탈북자 출신 안보강사들의 명단도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원정화는 생사를 걸고 북한 체제를 탈출한 탈북자로 자신의 신분을 ‘세탁’했다. 간첩활동에서 북한 말씨를 쓰더라도 의심 받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었다.
2001년 위장 자수했던 원정화에게는 이듬해 3월 정착금 2천200만원이 일시불로 지급되는 등 정착금·생계비 명목으로 모두 9천90만원이 지급됐다. 합법적인 신분과 수단을 활용해 14차례나 중국을 오가며 남한에서 수집한 정보를 북측에 직접 전달하거나 유·무선 통신으로 보고했다. 북한도 세 차례나 다녀왔다. 더구나 우리 군 장교들과 내연의 관계를 맺고 군사기밀을 빼내 북에 넘겼다. 동거까지 한 장교는 간첩인 줄 알면서도 사실을 숨겨줬다. 군 부대를 돌면서 반공 강연까지 했다. 50여 차례에 걸친 안보 강연을 통해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CD를 국군 장병에게 틀어 줬다. 대한민국 군사 보안 현실이 이 지경인데 망하지 않은 게 기적이다.
원정화는 김대중 정권 이후 지난 10년 간 우리 공안 당국이 적발한 2명의 ‘직파간첩’ 중 1명이다. 원정화에 앞서 적발된 북한 간첩은 2006년 7월 필리핀인으로 위장해 잠입했다 붙잡힌 정경학이었다. 원정화 사건은 지난 10년 간의 소위 ‘남북 화해 무드’속에서 우리 사회가 ‘안보 불감증’에 중독돼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대다수의 ‘진짜 탈북자’들이다. 탈북자 속에 간첩이 있는 게 아니라 간첩이 탈북자로 위장한 것인데 앞으로 탈북자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아 걱정스럽다. 탈북자들 가운데 원정화와 유사한 사람이 없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느냐는 시선이 있지만,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선의의 탈북자들이 의심을 받거나 위험에 빠지게 해선 안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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