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낸 세금으로 왜 잘 먹고 잘 산 ‘월가’ 사람들을 도와줘야 하느냐?” “나는 피땀 흘려 돈 벌 때, 그들은 거들먹거리며 돈 투기를 일삼았다” “그들은 망해도 나보다 더 잘 산다” 미국 사회의 중산층 이하의 분노다. 부시가 의회에 낸 7천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법안이 하원에서 부결된 배경에는 이같은 민중의 표심이 깔렸다. 민주당만이 아니라 공화당 의원 일부까지 가세했다.
온 세계가 야단 법석이다. 내일을 알 수 없는 하루 하루가 연일 긴장속에 넘어간다. 미국 경제가 거덜나면 우리 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유럽 등 경제까지 쓰나미가 이는 함수 관계는 이도 종속이론으로 설명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중동이 독과점적 석유장사로 먹고사는 것 과는 달리, 자연자원을 갖지 못해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는 정녕 대미 의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역시 어렵다.
시대의 구심점이 실종됐다. 자유방임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왔으나 소련 등 동구권의 사회주의 붕괴로 신자유주의도 상대성의 탄력을 잃었다. 네오콘, 즉 신보수주의는 오만에 차고, 진보주의도 ‘제3의 길’로 배회하는 등 시대의 구심력이 될 처방은 아니다. 한국적 뉴라이트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데 미흡하고, 한국적 좌파는 종북주의적 주술에 함몰됐다.
심지어 민주주의도 위협받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세계화의 압력으로 강대국들 중심의 이해 관계 질서의 준수를 요구받고, 대내적으로는 인터넷 포퓰리즘과 시민이 없는 시민단체의 권력화로 민주성이 결핍돼 간다. 각급 선거의 투표율이 갈수록 낮아지는 현상이 이의 식상을 반증한다.
오늘의 미국을 가리켜 ‘제국주의의 종말’이라며 혹평하기도 한다. 미국은 망하는가, 거대한 공룡이 치명상을 입긴 했으나 결코 죽진 않는다. 미국을 떠받드는 지식인층은 미국을 다시 살려놓을 것이다. 이같은 지식인층은 기성세대든 예비세대든 두터운 것이 미국 사회의 특징이다. 이들은 지배세력이다.
미국 사회가 신분제 사회로 변질돼가고 있는 것은 미국의 건국 이념과는 상반되는 병리현상이지만, 이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출생 신분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미국의 사회계층 분열은 심각하다. 부유한 집안의 자녀가 하버드 등 명문대학에 가 성인이 되면 또 부를 형성하는데 비해, 중산층 이하의 자녀는 이에 경쟁하기가 힘들어 사회적 신분 이동의 기회가 제약을 받는다. 잘 살거나 출세하는 집안은 대를 이어 잘 살거나 출세하고, 못사는 집안은 대를 이어 못살거나 출세를 못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그런데 미국을 구할 사람들이 바로 잘 배운 그들 일류 지식인층인 것이다.
국내 양상도 별로 다르지 않다. 특히 특목고나 수월성 교육을 두고 돈 있는 집 자녀만 공부하게 만든다고 야단이다. 학력고사가 학교의 서열화를 부추긴다고 떠든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사회생활이든 국제생활이든 모두가 어차피 서열화다. 평준화를 구실로 인재 양성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이야말로 역차별일 뿐만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망친다. 평준화는 기회의 평준화에 있는 것이지 능력의 평준화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인류는 두 명 이상이 모여살면 지도자를 둔다. 다만 그 형태에 따라 제도를 구분한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지도자와 지도계급은 피지배계급이 잘 살든 못살든 잘 먹고 잘 산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나 사회주의나 왕권주의나 하나도 다르지 않다. 모순이다.
지배계급의 그같은 선민화, 앞서 말한 세습화 등은 그것이 설령 필요악이라 할지라도, 절대 다수의 민중들 입장에서는 인내하기가 어려운 불평등이며 모욕이다. 그러나 당장은 이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 뭣인가가 나온다. 새로운 사상의 조류가 봇물처럼 터지는 시대가 금세기에 분명히 온다. 지금까지의 이론으로 해결은 커녕 설명되기도 어려운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변증법적 발전의 시대가 오는 것이다.
세계적 관심사가 된 미국의 금융 위기는 그같은 발전의 조짐이며 전주곡이다. 구곽이 깨지는 비명이다. 새로운 조류의 진통이다.
그러나 분명한 전망은 금세기라는 것뿐, 언제쯤 나타날 것인지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이래서 지금은 ‘프린서플’의 공황기다. 제자백가식의 기존의 주의, 주장은 상극되고 새로운 것은 보이지 않는 공백이기도 하다. 문제는 당장 어떻게 하느냐에 있다. 실용주의는 사상의 공황기에 처해 취할 수 있는 무난한 처방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 노선은 이 점에서 길은 제대로 잡았다. 한데, 실용주의의 목표 가치를 어디 두느냐에 따라 또 차이가 있다. 대외적 자원외교에서 대내의 금리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민생 위주가 돼야 한다. 재벌은 인정돼야 하나 투명해야 하고, 대기업과 수평 관계로 육성되는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 바뀌어야 된다.
가장 화급한 것은 미국발 금융 위기로 달러에 목마른 금융시장이다. 설상가상의 가계자금 연체로 압박을 가중 받게 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채무자가 원리금 상환 능력을 갖도록 하는 최저선의 민생안정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그들은 망해도 우리보다 더 잘 산다”는 말이 우리들 입에서 까지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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