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바로보기

최 선 희한국여성경제인협회 경기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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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갑을(甲乙) 관계는 통상 순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순서가 곧 서열화로 굳어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당사자인 을 외에는 그리 많지 않다.

서열에서 앞선 갑은 모든 지위나 영향력에서 을에 우월하게 존재하며 상대적으로 을은 갑에 비해 항상 약자일 수 밖에 없다.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을의 역할은 줄 곧 중소기업이 도맡아 해 왔다는 것도 을의 위치에 놓인 중소기업이 아니면 그 절실함과 억울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부터가 그러하다. 계약이란 것이 본래 동등한 위치에서 양쪽 모두의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지만 지금의 갑을 관계는 시작부터 불평등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납품단가연동제가 그러한데 중소기업의 경우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원자재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부도 위기에 내몰리고 있지만 대기업은 상생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면서도 이를 부담하기를 꺼려한다.

또 하청관계에서 비롯된 갑을 관계에서도 파견과 하청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중소기업은 인력을 공급하고, 생산을 처리하고 있지만 대기업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은 각종 위험 요소를 감수하는 것은 물론 때론 대기업에게 돌아가야 할 도덕적 책임마저 떠맡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은행 등 금융권과의 관계에서도 중소기업은 을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최근 환헤지 파생상품인 키코에 가입했다 피해를 입은 기업들이 집단 소송에 돌입하자 해당 은행들은 유동성자금 지원을 미끼로 소송파기를 유도하고 있다.

이들 은행들은 중소기업이 잘 나갈 때는 대출 수익으로 호의호식(?)하지만, 정작 중소기업이 어려움에 처할 때는대출중단 등을 주장하며 가장 먼저 중소기업을 위협하고 나서는 역할을 서슴치 않는다.

이 두 가지 사례 외에도 중소기업은 언제나 약자이며 피해자다.

그러나 갑을 관계를 떠나 중소기업의 실질적인 역할을 들여다 보면 중소기업은 우리 경제의 핵심을 담당하는 축으로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끝없는 취업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에서 일자리를 늘려야 하고,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도 중소기업의 시설개선사업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렇듯 우리경제의 90% 이상을 떠 받치고 있는 중소기업이 항상 갑이 아닌 을에 위치에 서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최근 정부가 국제금융위기와 키코피해 등으로 심각한 자금난에 몰린 중소기업의 지원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미흡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서열상 갑의 역할에 충실했던 금융권은 이번 정책에서도 자율권을 부여받으면서 중소기업을 지원하기보다는 옥죄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은행들이야 정부에서 대출을 늘리라고 해도 안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중 은행들이 정부 정책과 달리 중소기업 대출을 더욱 까다롭고 보수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은행권은 아직 갑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을이 없는 갑이 존재할 수 없듯이, 우리 경제의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이 없다면 은행 역시 존재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하고, 아울러 경제발전도 생각할 수 없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최대 위기를 맞은 이때 갑을 관계에서 벗어나 중소기업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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