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러스

홍승찬 예술의전당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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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많은 이야기들이 들리고 있고 더러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이야기가 실제와는 얼마나 가까운 지를 묻는 사람들도 있다. 특별히 지휘자로 등장하는 ‘강마에’라는 인물에 호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고 더불어 지휘자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흔히들 19세기를 피아니스트의 시대라 하고 20세기를 지휘자의 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21세기에 와서는 지휘자의 시대가 저물어간다고들 말하지만 아직도 지휘자를 대신할 만한 그 무엇인가는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20세기 클래식 음악에서 지휘자가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은 대단했었고, 그 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지휘자에 대한 관심과 선망은 여전한 듯 하다.

지휘자의 역할이 독립적인 영역을 차지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19세기 전에는 관현악단의 책임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음악을 이끌기도 했고 바로크 시대에는 쳄발로 연주자가 지휘자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 전에도 간혹 필요에 따라 지휘봉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과는 달리 지팡이처럼 긴 막대를 사용했고, 주로 그 끝으로 바닥을 두드려 시작과 끝을 알리는 용도로 사용했다. 19세기 이후에서야 지금과 같은 모습의 지휘자가 등장하게 되는데, 작곡가들이 지휘자를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지휘자였고 구스타프 말러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음악사에 등장할 만큼 중요한 인물 가운데 최초의 전업 지휘자는 한스 폰 뷜로우였다. 리스트의 딸인 코지마와 결혼했고 한 때는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지만 바그너의 영향으로 전업 지휘자로 나섰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초대 상임지휘자로 부임하였다. 이 악단은 1862년 벤야민 빌제가 만든 빌제 오케스트라로 출발했으나 형편없는 처우에 불만을 가진 단원들이 따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출범하였다. 지금은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전용 홀을 가지고 있어 모든 오케스트라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최초의 보금자리는 롤러스케이트장을 개조해서 만든 공연장이었다. 베를린 필과 쌍벽으로 일컬어지는 빈 필은 창단부터 지금까지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길지 않은 역사에도 세계적인 명 오케스트라와 어깨를 겨루고 있는 오르페오 챔버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없이 악장이 연주를 이끌어 가는 악단으로 유명하다.

음악의 다른 분야와는 달리 처음부터 지휘를 공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초의 전업 지휘자 뷜로우는 피아니스트로 출발해서 지휘자가 되었고 이후 지금까지도 피아니스트 출신의 지휘자가 많은 편이다. 바이올린이나 비올라를 연주하다가 지휘자로 나서는 경우도 흔한 편이지만 현악기 연주자에서 지휘자로 전향한 대표적인 경우라면 토스카니니와 쿠세비츠키를 꼽을 수 있다. 토스카니니는 원래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였고 쿠세비츠키는 당대 최고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였다. 피아노와 현악기 뿐만 아니라 관악기와 타악기 연주자들 중에도 지휘자로 나서는 경우가 있는데, 현재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타악기 연주자였다. 테너 플라치도 도밍고나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처럼 성악가가 지휘자로 나서는 경우도 있고 드물게는 발레리노 출신의 지휘자도 찾을 수 있다.

지휘자는 음악 뿐만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가져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케스트라의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하고 단원들과 자신의 관계는 물론이고 단원들 상호 간의 관계와 오케스트라 외부와의 원만한 소통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지금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지휘자들의 고뇌도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자, 우리 모두 이 세상의 지휘자들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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