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바담풍’

바람풍(風) 글자다. 서당의 학동들이 ‘바담풍’이라고 했다. 훈장이 읽은대로 따라 한 것이다. 훈장은 혀는 짧아도 귀는 밝았다. 학동들더러 틀렸다며 자기딴은 ‘바람풍!’이라고 했지만 학동들이 듣기는 여전히 ‘바담풍’인 것이다. 자꾸 이러다 보니 학동들은 훈장을 불신하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같은 훈장 꼴이 아닌가 싶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안 그래도 어려운 나라 경제에 엎친 데 덮친 치명상이 됐다. 사흘이 멀다할 만큼 이런저런 대책을 쏟아내는 데도 백약이 무효다.

많은 사람들이 ‘신뢰 상실’을 이유로 든다. 며칠전 대통령은 국회에서 연설을 했다. “외화 유동성 문제는 능히 감당할 것이며, 시장 불안이 해소될 때까지 원화 유동성을 선제적으로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여러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말은 옳은 말인 데도 공감대를 형성 못하고 있다.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게 시장의 반응이다. 연유는 두 가지다. 직접적인 것이 있고 간접적인 것이 있다.

직접적인 것은 미국발 쓰나미에 대한 당초의 대처 미숙이다. 뭣보다 말들이 오락가락했다. 정책이라는 게 갈팡질팡 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전광우 금융통화위원장 등의 엇박자가 심했을 뿐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도 각자가 이랬다 저랬다 했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IMF 때보다 위기가 심각하다”고 한 게 “IMF 때와는 다르다”고 말한 지 불과 사흘만이다.

간접적인 연유는 대통령의 가슴이 자리에 비해 너무 좁다. 포용력이 없다. 강만수를 당장 갈아치워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퇴진시킨다고 약발이 살아날 것이란 보장은 없다. 강만수 대신 또 그같은 사람을 앉히면 맹탕이긴 매 한가지다. 사람을 쓰는 눈이 대통령 주변에서만 맴돌아서는 마냥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지금은 경륜을 필요로 하는 때다. 예컨대 IMF 국난을 타개하는 데 선봉에 섰던 임창열 같은 사람을 들 수가 있다. 하긴, 본인은 경제부총리를 지내어 총리면 몰라도, 장관 자린 주어도 싫다겠지만 말하자면 그렇다. 한나라당은 야당시절에 노무현 정부를 가리켜 아마추어라고 비꼬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역시 그에 못지 않는 아마추어 수준 투성이다.

대통령의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 방법은 직·간접의 불신 요인을 거꾸로 푸는 데 있다. 우선 인재 기용을 주관화에서 객관화로 돌려 누가봐도 수긍하는 인재다운 인재를 써야된다. 그리고 과오를 시인할 것은 시인할 줄 아는 도덕적 용기다. 대통령은 소신은 약하고 고집은 센 것 같다. 금융위기의 초동 대처가 미숙했던 과오를 시인 않고 버티는 것은 고집이다. 위기의 현장을 살피기 보단 책상머리 보고에만 의존하는 것은 소신의 빈곤이다.

은행 점포·공장 기업체·식당·시장·농가·어촌·건설 현장·빈민촌·일선 시군 등등 대통령이 직접 살펴봐야 할 데가 참으로 많다. 이도 시나리오가 있어서는 효험이 없다. 무작위로 불시에 찾아야 거짓없는 얘기를 들을 수가 있다. 대통령 자신이 몸을 던져 국민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자 하는 진솔한 의지를 보여야 된다.

총지휘관이 위기돌파를 위한 공격 명령을 뒤에 숨어서 내리면 백 번을 외쳐도 부대는 서로 눈치만 본다. 지휘관이 몸소 앞장서 명령을 내릴 때 비로소 전진한다. 대통령이 뒤에 있기 보다는 맨 앞에 서야하는 것이 작금의 경제위기 전선이다. 각료들이 무위하고 부처 공무원들이 태만한 이유가 대통령이 전선의 후미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쏟아내는 금융위기 등 갖가지 대책은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여느 때 같으면 안 되는 턱도 없는 내용 들이다. 부동산 문제 등을 예로 들어도 그렇다. 내수 경색을 풀기위한 조치가 우선 급하기 때문인 것이다. 금융권 차관의 정부 지불보증도, 문제가 있으나 당장 급한 불부터 끄고 봐야하기 때문에 보증을 서는 것이다.

이런저런 정부 대책에 토를 달자면 얼마든지 달 수가 있다. 또 문제점 없는 대책은 없다. 요컨대 대통령이 시장의 신뢰를 얻고 있으면 덮어갈 수 있는 문제점도 신뢰를 얻지 못해 불신의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 사람이 밉게 보이면 다 밉고(악마효과) 예쁘게 보면 다 예뻐 보이는(후광효과) 심리작용과 같다.

국민사회는 가장 크게 보는 시장이다. 대통령이 좀 맘에 안 들어도 국난 수준의 위기 타개를 위해 시장의 대승적 이해가 필요하다. 아울러 대통령 또한 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생각컨대 시장의 이해 변화와 대통령의 자세 변화 중 대통령의 변화가 더 효율적이라고 믿는다. 무작정 ‘바담풍’이라고만 하지 말고, 바람풍을 ‘바담풍’이라고 한 것을 시인해야 된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부덕이다. 대통령은 덕이 없어 고독하다. 대통령의 부덕은 국민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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