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상에서 일본은 물리학상 수상자 3명과 화학상 수상자 1명을 배출했다. 이로써 1949년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가 물리학에서 첫 노벨상을 받은 이래 일본인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모두 13명으로 늘었다. 아직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옆 나라 일본의 비결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으며 많은 언론매체가 이에 대한 해설기사를 실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과학 분야에 대해 많은 연구개발비가 투입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왔다는 점이다. 맞는 지적이다. 2006년 일본의 정부·민간합계 연구개발비는 1천485억 달러로 우리나라 286억 달러의 5배 이상의 규모이다. 또한 일본에서는 정부의 지원 아래 거대입자 가속기나 지하의 우주입자 검출장치 등 고가의 거대 과학실험 장치가 다수 도입되어 왔지만 우리에겐 이러한 장치들이 없다. 이와 같은 차이는 한일 양국의 경제규모 격차를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우리로서는 최대한 연구개발비 비중을 늘리면서 정부 지원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국내언론이 많이 지적하는 비결은 일본 고유의 ‘장인정신’이 학계에도 살아 있다는 점이다. 이 또한 맞는 지적이다. 전통적으로 일본인들은 대를 이어 가업을 이어받아 그 분야에서 깊이 있는 업적을 쌓고 주위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성공한 인생으로 여긴다. 그런데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 두 명의 일본인 교수가 같은 대학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 물리학의 초석을 닦은 학자의 제자들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소립자 물리학이라는 영역을 깊이 연구하여 세계적인 학문성과를 낳았다는 사실이 학계에서의 장인정신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비결에 대해 국내언론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조금은 획일적으로 보이는 일본사회가 실제로는 많은 ‘다양성’을 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학계에도 학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풍토가 강하게 남아 있다. 이것은 연구와 교육활동으로 일본에서 십여 년 살았던 필자로서 자주 느꼈던 점이기도 하다.
노벨 과학상은 주로 그 분야의 초석을 닦은 경우에 주어지는데, 이러한 연구는 학문적으로 다양성이 인정되는 풍토에서 가능하다. 다시 말해 과학에 대한 많은 지원과 학문적 장인정신은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지만,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연구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정부의 지원을 가장 많이 받으며 간섭 또한 많이 받아 온 도쿄(東京)대학보다 자유분방한 학풍이 강점인 교토(京都)대학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었다는 점, 또한 이번 노벨 과학상 수상자 세 명이 마찬가지로 방목 스타일의 연구가 이루어져 온 나고야(名古屋)대학 출신들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우리 정부는 많은 예산을 들여 해외 노벨상 수상자들을 국내 대학에 유치하겠다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의 어느 대학은 거학 차원에서 ‘노벨상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위에서 설계하는 방식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을까? 운이 좋아 기존 스타 교수들 중 한두 명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꾸준히 노벨상이 배출되는 시스템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보다는 국내의 많은 젊은 연구자들을 믿고 그들이 국내나 해외에서 자유롭게 연구하도록 묵묵히 지원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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