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와 민주당 사람들

총통은 권력적으로 대통령보다 상위 개념이다. 왕조와 버금간다. 왕 보다 하위 개념인 것은 혈통 승계가 안 되는 것으로 구별된다. 나치스 독일이 총통제였고 히틀러는 막강한 총통의 권한을 무소불위로 휘둘렀다.

이토록 지존한 총통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대만의 천수이볜은 전 총통이지만 총통은 총통인 것이다. 검찰에 체포되어 법원으로 호송되는 천수이볜은 수갑이 채워진 두 손을 머리위로 치들고는 “정치탄압”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대만 국민의 반응은 싸늘하다. 천수이볜의 ‘수갑 쇼’는 파렴치범의 단죄를 정치적으로 둘러대는 것이었으나 “벌써 감옥 갔어야 할 사람”이라는 게 대만 국민들의 한결같은 야유다.

그는 2002년 7월부터 2006년 3월까지 국가기밀비 횡령, 뇌물수수 등을 일삼아 돈세탁으로 일부는 해외에 빼돌렸다. 해먹은 돈이 밝혀진 것만도 우리 돈으로 1천320억원 규모다.

진보주의를 표방한 민진당(民進黨) 당수였다. 대만 민주화의 영웅으로 총통에 당선된 것이 2000년이다. 그러나 천수이볜 총통의 진보정책은 경제난을 가져와 만성적 경기 침체를 유발했다. 여기에 총통을 비롯한 가족 및 친인척의 비리가 분분한 가운데, 지난 5월 퇴임한 지 6개월 만에 마침내 범행의 수괴가 되어 감옥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가 지도자의 이같은 전락은 비록 이웃 나라지만 보기에 좋은 것은 아니다. 때마침 전 대통령 노무현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또 내뱉었다. 그의 한·미 FTA 재협상론은 남의 말을 해대는 것 같아 무책임해도 심히 무책임하다. “먹고 사는 문제”라며 협상 타결을 적극 추진했던 장본인이 바로 대통령이었던 그다.

‘서로 불만족스런 것은 다시 조정해야 한다’지만 재협상을 해도 불만족스런 점은 또 있기 마련이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 오바마의 불만은 주로 자국의 자동차 생산업계 보호에 있다. “미국은 수십만대의 한국자동차를 사주는 데 비해 한국에서 사는 미국 자동차는 고작 수만대에 불과하다”는 것은 오바마가 항상 토로하는 불만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오바마 보단 노무현이다. 자기가 뭐라고 오바마 말을 거들고 나서는 지 모르겠다. 자신이 해놓은 일을 자신이 뒤엎는 토달기는 민주당더러 국회 인준을 극력 저지하라는 ‘상왕정치’의 개입이다. 총통을 방불케 한다. 언제는 “먹고 사는 문제”라던 것을 이젠 못하게 방해토록 한다면, 그럼 민생은 안중에 없다는 것인 지 실로 하는 짓이 괴이하다.

지금 항간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신수 편한 사람은 노무현이다’란 말이 파다하다. 중세기의 장원(莊園)같은 ‘봉하궁’을 무슨 돈으로 지었는지 궁금해 하는 것은 사회적 관심의 의문이다. 그러면 조용히 장주(莊主)노릇이나 할 일이지, 상왕 노릇까지 하려고 드는 것은 망발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협정이 타결됐으면 고쳐도 시행해보고 고치는 것이 국가 간의 신의다. 시행도 않고 고치는 건 순리가 아닌 게 그런식으로 하자면 고치다가 장 파한다. 오바마가 아무리 보호무역을 선호해도 자유무역의 조류를 거역할 수 없고,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장주의의 재앙이긴 해도 역기능보단 순기능이 더 많은 것이 그래도 역시 시장주의다.

민주당은 참 이상한 정당이다. 자기네가 집권했을 때 한 일을 부정하는 것은 한·미 FTA 말고도 또 있다. 쌀 소득보전 직불금 문제를 예로 들수 있다. 쌀 소득보전 직불금은 정책방향은 좋았으나 시책이 잘못된 게 실패의 원인이다. 수천억원의 나랏돈을 경작농민이 아닌 투기꾼 지주들이 챙겨 농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판에, 마치 현 정부의 잘못인 것 처럼 덤터기 씌우는 행태는 반성을 모른다고 보아진다.

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노무현을 비롯해 하나도, 둘도 개혁이라며, ‘개혁’의 구호속에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행태를 걸핏하면 ‘반개혁’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 붙였다. 그랬던 구정권 사람들이 오늘날에 와서는 자신이 ‘반개혁’의 우리 속에 갇혔다.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자기네가 했던 일도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습관성 구태, 줄을 잇는 구정권 사람들의 비리 백과는 반개혁의 표본이다.

민주당은 흠집내기 표적수사라고 힐난한다. 그렇지만 천수이볜의 ‘수갑 쇼’에 대만 사회가 냉담했던 것 처럼, 국내 사회도 민주당의 주장에 냉담하다. 유한열 한나라당 고문 등 여권 사람들도 비리가 들통나서 감옥에 떼어 들어갔다.

한나라당이라고 국민사회의 눈에 좋게 비치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당은 실로 속죄를 모르는 집단이다. 열린우리당에서 민주당으로 위장 개업을 했다고 하여 진보노선의 잘못된 열린우리당 업보가 모면되는 것은 아니다.

봉하마을의 장원은 진보주의 모순의 상징이다. 그같은 장주 영향권에 들어 편승해서는 더 이상의 미래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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