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범람

조 성 진성남아트센터 예술감독
기자페이지

텔레비전 드라마를 거의 안 보는 내가 몇 년 전 꽤 열심히 본 드라마가 있다. 국내외에서 인기를 모았던 ‘대장금’이다. 평소 먹을 것에 관심이 많다보니 거기 소개되는 음식들이 ‘볼만’했지만 내가 흥미롭게 본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고증이 잘 되었다는 전제하에 그 드라마는 조선시대 궁중의 전문인 양성 시스템을 잘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루는 재료에 대한 정통한 지식을 쌓아야 하고 요리법의 이론과 실기 시험에 합격해야 하는 등 요리사를 기르는 철저한 교육과 훈련이 있다. 그 조직에서 선배는 후배보다 더 실력이 있고 팀장은 확실한 권위를 가진다. 여기에도 시기와 암투, 모략과 음모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윗사람은 아랫사람들의 부조리를 경험과 인덕으로 슬기롭게 누르고 조절해 나간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입은 살아 떠들지만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실제로 무엇을 해보라면 전혀 할 줄 모르는 자들이 너무 많다. 더구나 전문성을 옳게 판단하는 풍토가 아니어서 너도 나도 전문인이라고 외치고 나서면 누가 ‘원조 전문인’인지 헷갈리는 수도 있어 위험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병원 사무장 하던 사람이 면허를 위조해 버젓이 의사 행세를 했다는 뉴스도 있었거니와 이러다가는 항공사 임원이 퇴임하기 전에 점보제트기를 조종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이야 사람 죽는 것을 보면 확실히 드러나는 일이지만 문화계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도 아니라고 우겨대면 그만이다. 그리하여 관객의 눈과 귀를 처참하게 만드는 공연을 하고서도 공연장 로비에 어찌 동원했는지 각계의 유명인사들이 보낸 화환을 즐비하게 늘어놓으면 그만이다.

의사나 조종사처럼 위조라도 해야 할 ‘면허’가 필요한 분야와 달리 문화계는 대학졸업장이 ‘증’ 노릇을 하니 너도나도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는 전혀 상관 없는 분야도 오히려 등록금이나 내고 산 알량한 졸업장이 강력한 ‘자격증’ 노릇을 하니 문제다.

‘대장금’의 무대는 궁중이고 왕을 위한 것이니 그렇게 시스템이 철저했는지 모른다. 오늘날 고객이 왕이 되었으니 고객을 상대로 하는 곳은 그만큼 철저한 직장내 교육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는 곳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고객’의 개념이 철저하게 뿌리내리지 못한 문화계, 특히 공연계는 그러한 전문인 양성 시스템을 만나기 어렵고 하물며 사회와 동떨어진 듯이 여겨지는 일반 학교를 보면 그 교육을 받아 사회에서 써먹을 수 있다고 기대할 수조차 없다.

무대에 서는 사람들에 대한 판단이 객석에 앉은 관객들의 공감으로 이루어져 어느 평론가의 현학적 평보다도 정확하게 나오는 사회라면 ‘증’을 가지고 관객을 속이는 일은 없어진다.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는 프로정신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관객에 판단을 정치에 비유하면 ‘민심’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민심을 천심으로 알고 겸허히 받아들이며…” 등등의 말들은 하지만 거기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는 것 같다.

사회가 이러하니 프로들을 길러내는 교육 시스템이 철저할 수가 없다. 재주와 운이 잘 맞아떨어져 어린 나이에 세계적 명성을 얻은 예술인들을 떠받들기는 해도 그렇게 될 만한 사람들을 길러내는 시스템은 허술하기 짝이 없고 하물며 한국에서 길러내 외국에 내보내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꿈을 가진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시 바삐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배우고 싶어한다. 그러나 엉성한 시스템에서 기초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외국에서 힘겨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귀국했을 때는 밀어닥치는 허망함을 느껴야 한다.

장래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겨를이 없이 일단 수능에 생사를 거는 청소년들을 올해도 보면서 이 환경이 언제나 고쳐질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