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전국적인 가뭄으로 서울 거리가 걸인들로 넘치던 때 구세군 자선냄비 운동이 처음 시작됐다. 그해 성탄절 기간 전국 20개 지역에서 849원을 모금했다. 그 돈으로 130여명의 걸인들에게 식사를 배급했다. 태평양전쟁 때인 1943~1946년과 6·25전쟁 때인 1952년을 빼고 자선냄비 모금은 꾸준히 이뤄졌다. 모금액은 해마다 늘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모두가 허리띠를 동여맸을 때도 자선냄비 모금액은 늘었다. 1996년 12억2천487만원이던 모금액은 외환위기 한파가 불어닥친 이듬해 13억4천59만원으로 1억원 이상 증가했다. 경제 위기가 회복될 무렵인 2001년은 22억5천403만원으로 훌쩍 뛰었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우리나라에서 연말 사회 구제 운동의 한 척도가 돼왔다. 올해 목표 모금액은 32억원이다. 사상 최대치다. 하지만 모금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 위기를 알리는 한파가 곳곳에서 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선냄비 모금 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모금액이 줄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외환위기 때를 비교하지만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전국민이 합심해 난국을 헤쳐가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하지만 요즘은 배부른 사람만 계속 배부른 양극화 현상이 심해져 온정까지 추위에 얼어붙는 마당이다.
자선냄비는 다른 모금들과는 달리 돈을 내는 사람을 밝히지 않는 소액 구제 운동이다. 그러나 80년 동안 천사의 손길처럼 세상을 밝히고 사람들의 가슴을 추위에서 녹여 주었다. 자선냄비는 세월의 인정을 가늠하는 줄자와 마찬가지다.
그 옛날 어른들과 함께 자선냄비에 정성을 넣던 나이 어린 소년·소녀들이 지금은 성인이 됐다.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들도 적지 않다. 80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계시다. 인정이 강물처럼 흘러왔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착한 사람이 훨씬 많음을 입증한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사랑의 종’은 11월 1일 울린다. 내가 아무리 살기 어려워도 이웃을 돕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은 눈물겹다. 전국 거리 거리에서 사랑의 종이 울리면 뜨거운 인정들이 빨간 자선냄비를 뜨겁게 채워줄 것으로 믿는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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