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시스테마’와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홍승찬 예술의전당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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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14일과 15일 이틀 동안 예술의 전당과 성남아트센터에서 있었던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 우리 음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뛰어난 연주가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 오케스트라와 관련된 아름다운 이야기가 더욱 가슴을 뭉클하게 했기 때문이다.

1975년 베네주엘라의 과학자이자 정치가인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불우한 처지에서 방황하는 7명의 청소년들을 자신의 집 지하 주차장에 불러 들여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음악을 배우려는 청소년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더 넓은 장소와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정부와 기업, 국민들의 호응을 호소하고 또 이끌어내면서 오늘날에는 범국가적인 음악교육사업인 ‘엘 시스테마’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2005년 30주년을 맞이하면서 그 수혜자는 40만명으로 늘어나 있었고 현재는 전국의 200개가 넘는 지역센터에서 두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의 아동, 청소년 25만명이 1만5천명이나 되는 교사들의 지도를 받고 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상이 되는 청소년 모두가 저소득층이거나 학습장애, 혹은 신체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가르치는 교사들은 대부분 ‘엘 시스테마’의 초기 수혜자들이라는 사실이다.

현재 볼리비아 전국에 이렇게 만들어진 어린이 오케스트라는 90여개에 이르고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130여개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오케스트라가 이번에 내한한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이다. 여기서 교육을 받은 더블 베이스 연주자 에딕슨 루이즈는 베를린 필의 최연소 입단 기록을 세우며 세계를 놀라게 했고 이번 내한 공연의 지휘를 맡은 구스타보 두다멜은 26살에 이미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로 발탁되어 내년에 부임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이런 사실을 접하면서 모두들 마치 이전에는 없었던 획기적인 일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오래 전 유럽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고 그것이 오늘날 그들이 자랑하는 클래식 음악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콘세르바토리오(conservatori)라고 하면 지금은 당연히 음악을 포함한 여러 예술 장르의 전문교육기관을 일컫는 말로 알고 있지만 이것이 원래는 르네상스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병원에 부설되어 있는 고아원을 지칭하던 이탈리아말 콘세르바토리오(conservatorio)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병원’을 뜻하는 오스페달레(ospedale)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그 유명한 바로크 시대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가 원장으로 있었던 베네치아의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가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당시 이런 시설들은 공공의 지원과 더불어 정규적인 일요 연주회의 수익금으로 운영되었는데, 이 음악회를 위해 비발디는 수백곡이 넘는 협주곡을 작곡해야 했고 음악에 재능 있는 원생들을 훈련시켜 그 곡들을 연주해야 했다. 비발디가 지휘하는 소녀원의 성가대와 관현악단의 연주는 곧 베네치아 사람들의 입이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조차 비발디의 연주회에 참석하는 것을 관례로 여길 만큼 유명하게 되었다.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는 자신들의 내한 연주회에 부산에 있는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초청하였다. 사라 장이 협연을 하고 정명훈이 지휘를 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세상의 관심은 그다지 크지 않고 우리 사회는 이런 사례를 널리 확산시키고자 하는 의지도 없는 것 같다. 이탈리아의 콘세르바토리오의 정신이 엘 시스테마로 부활한 것처럼, 그로부터 다시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가 새로운 힘을 얻고 그 뜻과 길이 활짝 열려 언젠가는 우리 모두의 자랑이자 긍지로 자리잡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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