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산다는 것은 인간애의 나눔이다. 지난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주택가에 전투기가 추락한 참사현장은 재미교포의 집이었다. 출근길 작별을 나눈 아내와 두 딸, 그리고 딸네 집에 왔던 장모를 일시에 잃은 30대 가장 윤동윤씨는 청천벽력 같은 사고 소식을 듣고 그만 실신했다.
“전투기 조종사가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은 눈물속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가 한 말이다. 며칠뒤 전해진 위로금을 공익재단에 기부했다. CNN 등 많은 미국 언론의 이같은 보도는 미국인 사회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이루었다. 그것은 인간애의 물결인 것이다.
하필이면 그처럼 착한 이의 집에 왜 불벼락이 떨어졌을까, 모른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시련일 것이다. 횃불은 어둠속에서 더 빛을 뿜는다. 고통 가운데서 피는 인간애는 더욱 아름답다. 그는 그같은 인간애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애는 인성의 나눔이다. 한문의 사람인(人) 자는 서로 의지하지 함을 나타내는 상형문자다. 인간의 삶을 인성 나눔으로 보는 전래의 동양사상인 것이다. 억척스럼과 악인스럼은 구별된다. 억척은 노력이다. 악인스럼은 악행이다. 억척스런 노력은 결과가 좋지만, 악행의 끝은 좋지않은 것이 인간사의 섭리다.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는 ‘노자’(老子)에 나오는 말이다. ‘하늘의 그물은 엉성한 것 같지만 걸러내는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자는 본명이 이이(李耳)다. 중국 춘추시대 철학자로 도가(道家)의 시조다. 저서 ‘노자’는 ‘노자도덕경’이라고도 한다.
#뺛재미교포의 인간애는 생활인의 인성나눔이다. 이런가 하면 목민관의 인성 나눔이 있다. 목민관의 어휘는 정약용(丁若鏞)의 저서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유래한다. 관리의 바른 길을 사례를 들어 일깨운 책이다. 모두 48권 16책으로 된 목민심서는 내용이 인간애로 집약된다.
근래에 있었던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예를 들겠다. 불우이웃돕기 김장 담그기가 있었던 날이다. 현장을 방문했던 그는 내친 김에 김치를 전해주는 데 까지 함께 갔다. 공교롭게도 김 지사가 간 곳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집단거주지역이다. 그는 집집마다 김치통을 직접 들고 찾았다.
그런데 도지사의 이 방문은 한마디로 곤혹이었다. “네가 도지사일 것 같으면 내손에 장을 지지겠다. 흰소리 그만하고 빨리 김치통이나 놓고 가!”하는 소릴 듣거나 “도지사가 미쳤다고 여길 오냐? 잘 해야 동사무소 직원이겠지!”하는 말 등을 듣곤 했다.
잠바 차림의 소탈한 면모에 설마 진짜 도지사일 것으로는 믿지 않았던 것이다. 몇 안되는 수행원이지만, 수행원이 굳이 더 설명을 안 한 것은 아마 ‘그래도 가만 두라’는 김 지사의 당부가 있어서일 것이다. 더러 진짜 도지사로 안 사람들에겐 호소하는 어려운 형편을 일일이 다 들어줘야 했다.
이렇게 해서 김치통을 다 나눠주는 데 두 시간 이상이 걸렸다. 도지사가 졸지에 동사무소 직원이 되긴 했으나, 그는 사는 형편을 세간붙이까지 다 살폈던 것 같다. 김 지사 당자의 후일담은 듣지못하고 또 들을 필요도 없지만, 미쳐 생각치 못했던 많은 것을 직접 보고 느꼈을 것이다. 이는 나중에 주민들에게 들은 얘기다. 곤혹스러움을 미소로 달게 넘기며 민초의 형편을 세세히 살핀 것은 목민관의 인간애인 것이다.
#뺛마침 오늘은 성탄절이다. 독생자 아기 예수가 예루살렘 남쪽 베들레헴의 한 구유에서 탄생한 날이다. 성탄절에 생각되는 것은 그 분의 최후다. 머리엔 가시나무 줄기로 만든 가시면류관을 쓰고 양손은 골고다(Golgotha)의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다. 예루살렘 교외에 있는 언덕 골고다는 해골을 뜻한다. 예수의 마지막 말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였다. 성인의 인간애인 것이다.
크리스찬이든 아니든 성탄절은 좋은 날이다. 성인의 인간애는 종교를 초월한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돌아보는 것은 앞으로 더 가기 위해서다. 과거를 돌아보는 건 미래를 향한 이정표의 확인인 것이다.
인간의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부모는 자녀를 만나고, 자녀는 부모를 만난다. 성장하면서는 친구들을 만나고, 결혼은 남남끼리 갖는 부부의 만남이다. 다중의 사회생활 또한 만남의 광장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이긴 하다. 만남은 이미 헤어짐이 정해졌다. 그러나 만남은 소중한 삶의 자산이다. 묵은 만남의 정은 더 두텁게 하고, 새 만남의 정은 값지게 하는 것이 인간애다. 인성 사랑의 인간애 앞에서는 빈부귀천이 있을 수 없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예외가 없는 인간애의 나눔이기 때문인 것이다.
/임양은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