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국가에서 모든 종교는 관용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의 국가에서는 각자의 좋은 대로 행복하게 될 수 있다” 계몽주의를 받들며 가톨릭이거나 프로테스탄트이거나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치는 자를 좋아하지 않았던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1712~1786)가 한 말이다. 그는 자유사상가를 존중했으며 신앙을 속으로는 비웃고 있었다. 특히 그가 싫어하는 것은 기적을 믿는 일이었다.
예컨대 왕의 테이블 위에는 분수가 있었고, 거기서 솟아 오르는 물에서 좋은 향기가 풍겼다. 어느 날 분수가 막혀 물이 나오지 않았다. 궁정의 과자 만드는 사나이가 아무리 고치려고 애를 썼지만 물이 솟아나지 않더니, 잠시 후 소리 없이 물이 다시 솟아 올랐다. 왕이 빙긋이 웃으며 사제에게 물었다. “가톨릭의 나라에선 이것을 기적으로 인정하겠구먼” 사제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폐하가 계신 곳에서는 무리한 일일 것 입니다.”
또 다른 얘기가 있다. 한 병사가 성모 마리아의 제단에 있는 은그릇을 훔치다가 들켰는데 그는 마리아가 용서하셨다고 거짓말을 했다. 왕은 그 병사의 속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사제에게 물었다. “그런 기적도 있는 것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제는 아니라고도 할 수 없어 그렇게 대답했다. 물건을 도둑 맞은 수도원은 기분이 나빴으나 왕은 모르는 척하고 그 병사를 용서했다. 하지만 “두 번 다시 마리아한테서 그런 선물을 받지 않도록 해라!”하고 주의를 주었다.
프리드리히 왕은 종교에 대해서 매우 냉소적이었다. 그러나 종교를 박해하지 않았다. 그는 군비를 증강하고, 산업을 장려하고 프로이센의 국위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군주는 그 나라의 첫번째 하인이다”란 말을 하고 통치의 철학으로 삼았다. “남을 부린다는 것은 쓰이는 일”이란 말이 연상된다. 당시의 왕으로서 이 만한 겸손한 생각을 갖기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왕조 시대엔 두 말 할 나위 없지만 대통령들도 가히 제왕적이었다. ‘불행한 대통령’의 운명을 자초한 원인이다. 종교관 또한 대부분 편향적이었다. 신자들을 구금하는 것 만 종교 탄압이 아니다. 통치자의 종교는 자유이지만 특정 쪽으로 치우쳐선 안 된다. “군주는 국가의 하인이다”라는 프리드리히 왕의 말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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