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의 고담(古談)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걸으며 노새를 끌고 갔다. 사람들이 ‘기왕이면 타고 가지 그냥 간다’며 흉을 봤다. 아버지는 아들을 태웠다. 이번엔 사람들이 ‘나이 많은 아버질 걷게하고 아들이 타고간다’고 나무랐다. 그래서 아들을 걷게하고 아버지가 탔다. 하지만 사람들은 또 ‘어린 아들을 걷게하고 아버지 위세로 제가 타고 간다’며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남의 눈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남의 말을 다 듣다간 이도 저도 안 된다. 작금의 나라 사정이 아들과 노새를 둔 아버지 형편과 같다.
결정은 아버지가 한다. 노새의 고삐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노새가 병약하면 부자는 걸어서 가고, 아들이 피곤해하면 아들을 태우고, 아버지가 불편한 데가 있어 힘들면 아버지가 타면 된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또 노새의 컨디션에 따라 선택하는 아버지의 결정이 만약 잘못된 게 있으면 아버지의 책임이다.
나랏 일, 특히 요즘 화두인 경제위기 대처방안도 마찬가지다. 이런 말 저런 말들이 많지만 선택은 일에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의 몫이다. 국정의 책임이 곧 고삐인 것이다. 장·단점이 없고 문제가 없는 정책은 없다. 정책은 선택과 집중이며, 무슨 정책이든 타이밍이 있고 시효가 있다.
‘Yes, We can’‘예(그래) 우린 할 수 있다’는 것은 오바마의 좌우명이다. 그는 미국 대통령 후보 민주당 경선에서도, 이어 당선된 본선에서도 늘 이 좌우명을 강조했다. ‘can not’(아무것도 할 수 없다), ‘must not’(해서는 안 된다) 등을 패배주의자나 무사안일을 일삼는 자들의 넋두리로 질타했다.
작금의 국가사회, 특히 정치권이 ‘can not’ ‘must not’ 병에 빠진 매너리즘은 성찰해야 할 현상이다. 씨름꾼이 처한 곤혹은 모르고 구경꾼이 ‘이 다리 떠라 저 다리 떠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도 했다. 관전평도 좋고 충고도 좋다. 견해가 다른 이견도 있어야 하고 비판도 있긴 있어야 된다. 문제는 내 말, 내 생각이 아닌 다른 말, 다른 생각은 안 된다는 사유(思惟)의 경직성이다.
과거 10년간 이 나라를 지배해온 신기득권 세력의 이념 성향에서 그같은 경직성이 발견되는 것은 유감이다. 상대를 타도 대상으로 보는 투쟁 우위의 반민주적 폭력 불사는 심히 우려스럽다. 암은 사망률 1위를 기록하는 두려운 병이다. 한데, 암은 병균이 기숙하고 있는 환자를 숙주삼아 부단히 괴롭힌다. 숙주인 환자가 암의 괴롭힘으로 죽으면 암도 따라 죽는데도 인간을 주검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암이다. ‘암적 존재’란 말이 있다. 국가사회에 ‘암적 존재’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백의민족’이란 조상들이 흰옷을 입은데서 유래한다. 그런데 흰색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구극(究極)의 색으로 불멸의 빛깔이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백의관음은 흰 옷에 흰 연꽃 가운데 앉아있는 관세음보살이다. 이런 종교적 비유가 아니고도 하늘과 땅을 숭배한 민족 고유의 신앙에 뿌리를 둔 것이 흰색이다. 제사 땐 흰옷에 흰떡·흰술·흰밥을 올렸던 관습은 역시 흰색을 중심으로 했던 옛 천제에서 유래된다.
기억해야 하는 것은 흰색은 불멸의 빛깔이란 사실이다. 모든 색깔이 이 바탕 위에서 시작되는 흰색은 또 모든 색깔을 포용하는 모태이기 때문인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 민족처럼 내외의 수난을 겪은 민족도 드물다. 이런데도 세계에서 빠지지 않는 우뚝 선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천지를 상징하는 불멸의 백의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지금 경제가 어려운 것은 일일이 필설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만큼 막심하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멀리 비할 것도 없다. 인명이 파리 목숨 같았던 6·25 한국전쟁 당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같은 인명의 위험에도 생계를 이어가며 살았다. 경제 위기가 닥치긴 했어도 인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금의 위기를 타파해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6·25를 경험하지 못한 전후세대, 특히 젊은이들은 6·25를 말하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그렇다. 전쟁 경험세대가 그같은 고초를 겪었기 때문에 전후 세대 또한 같은 고생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지금의 전후세대나 젊은이들의 몸속엔 국난을 극복해낸 그같은 유전인자가 자신들의 핏속에 역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권의 한 친박인사가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은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믿었던 의문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이 됐으면 그를 국난을 타개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된다”고 했다. 이외의 정치적 문제는 국난 타개후에 가릴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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