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는 번식지와 월동지를 최소 1천㎞ 이상 장거리 이동한다. 러시아와 중국, 몽골, 알래스카에서 번식하던 철새들이 ‘동토의 땅’을 떠나 10월 중순부터 남하해 한반도에서 월동한 뒤 이듬해 봄 번식지로 돌아간다. 추위를 피하고 먹거리를 찾기 위해 4천여㎞를 날아 오고 간다. 도요새나 물새떼는 북반구인 시베리아·알래스카에서 우리나라 서해 한 갯벌을 ‘중간기착지’로 경유해 호주나 뉴질랜드로 1만여㎞를 날아가 겨울을 피한다.
한국조류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기록되거나 관찰된 철새는 총 530종이다. 태풍 등으로 길을 잃은 미조(迷鳥)를 포함한 수치다.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겨울 철새는 143종 140만7천447마리다. 1위는 가창오리다. 국립생물자원관이 습지 140곳을 조사한 결과 가창오리 62만6천610마리가 날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95%의 가창오리가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난다. 청둥오리 17만1천296마리, 쇠기러기 10만2천945마리가 한국을 월동지로 택했다.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 지역엔 재두루미 3천마리와 흑두루미 1만마리가 월동한다. 한반도에서 월동하던 두루미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새들의 피난처인 습지와 갯벌이 파괴되고 먹거리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데다 밀렵 등 인간의 간섭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철새는 한 나라의 환경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관광 수입도 무시할 수 없다. 이즈미 지역의 경우 연간 50만여명의 관광객이 두루미 탐조를 위해 찾아온다. 일본은 철새 보호를 위해 논에 은폐막을 만들거나 도로를 폐쇄하고, 영국은 논밭 가장자리에 생울타리를 세워 철새를 보호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5대 연안 습지로 꼽히고 갯벌과 갈대, 철새와 사람이 청정하게 어울리는 순천만을 가로지르는 목포~광양 고속도로를 개설 중이다. 문제의 구간이 습지보호구역은 아니지만 순천만 생태계보존지구를 관통하는 까닭에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고속도로 장벽으로 분단될 처지에 놓였다. 해마다 200여종 6만~7만마리의 철새가 이곳에 둥지를 틀고, 2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소리 죽여 탄성을 지르는 순천만 한복판에서 고속도로 공사를 강행한다. 우리나라는 환경보호 후진국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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