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日流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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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문제 등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국가의 자존심을 건 신경전을 벌인 일도 잠시잠깐이다. 한국의 일부 상류 사회에선 전혀 다른 세상을 산다. 그들만의 일본 제품 및 일본식 문화 향유가 나날이 확산된다. 상류층의 접대 문화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호텔의 일식집 저녁 특선회 정식 코스 요리는 1인당 30만원이다. 저녁식사 값으로는 초고가이지만, 3~4일전 예약을 해야 한다. 더구나 최근 저녁 특선 가격을 10만원 가량 인상했는데도 손님들이 되레 더 찾는단다.

상당수가 와인보다는 사케(일본 청주)를 즐겨 마신다. 한국에 유학 온 일본인 종업원들은 인사는 물론 주문도 일본 말로 받는다. 일본 맥주를 한 잔 들이킨 손님들은 사케를 찾는다. 손님들은 마시다 남은 사케를 ‘키핑(보관)’해 놓기도 한다. 키핑한 사케를 모아 놓은 선반에는 대학교수와 대기업 임원 명함이 즐비하다. 3, 4명 정도가 사케 2~3병을 마시고 안주를 시키면 주대는 40, 50만원을 훌쩍 넘어서지만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티셔츠 한 벌에 40만원이 넘는 일본 의류도 불티나게 팔린다. 고양이가 그려진 이 브랜드는 상류층 사이에 ‘고급 골프 의류’ 인식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골프장에 가면 거의 이 브랜드 옷을 입어 이젠 주부들도 멋으로 한 벌 장만할 정도다.

독도 문제만 터지면 부진했던 일본산 자동차 판매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독도 파동 조짐이 일었던 6월 렉서스, 혼다, 인피니티 등 일제 수입차 판매량은 2천289 대였다. 전체 수입차 시장 점유율이 사상 처음 40%를 넘어섰다. 일부 네티즌들의 불매 운동 조짐이 나타났으나 실제 구매자인 상류층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은 싫지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일본 제품을 소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다.

일제 전기밥통 정도를 회고하는 기성세대에겐 먹고 마시고 입고 쓰는 일상적 소비재에 파고드는 요즘의 ‘신일류( 新日流)가 놀랍지만 상류층은 아기들의 기저귀도, 손수건, 장난감도 일본 제품이다. 한국 제품이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탓도 있지만, 같은 성능의 국산보다 훨씬 비싼데도 일제를 선호하는 건 상류층의 헛된 과시욕이다. 치유하기 어려운 정말 큰 병(病)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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