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호 열차가 출발한 시점에서 지난해를 돌아본다. 과거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통감한 국민들이 이른바 ‘경제대통령’을 뽑고 모두 기대에 부풀어 있을 때 미국에서 시작된 전세계 경제 한파가 밀어닥쳤다. 불안이 불신을 낳고 이어서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전폭적 지지가 표현되지 않은 채로 어영부영 1년이 지나간 셈이다. 경제 전문가들의 진단과 분석이 무엇이든 ‘살아갈 길’에 대한 불안감과 위기감은 올해도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당연한 듯 피부로 느껴진다. “다사다난했던 작년을 뒤로 하고 올해는 희망찬…” 운운의 평소 신년 각오는 이번에는 적절치 않은 듯하다. 그러면 새해 첫날부터 웅크리고 있어야 하나?
이 상황에서 가장 가치있는 말을 고르라면 “위기를 기회로 삼자”라는 말이다. 이 말이야말로 내년부터는 상황이 좋아지리라는 전문가의 말보다도 더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나아가 용기를 주는 말이다. 어느 분야에서도 이 말은 유용하고 공연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연문화란 상식적으로 판단해보아도 잉여농산물에서 발생한 것이요, 엔터테인먼트는 공연문화의 본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여전히 지배하는 그런 발생학적인 타성을 극복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진지하고 냉철하게 지금까지의 사고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첫째, 공연물은 상품이요, 공연장은 공연물을 파는 곳이라는 인식을 재차 확인해야 한다. 공연물이 팔려야 하는 상품이라는 인식에 도달하면 경제가 어려울 때 나오는 상투적인 요구가 그릇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무조건 제작비를 줄였을 때는 팔리지 않는 상품이 나올 확률이 큰 법이다. 더구나 무료공연을 하라는 요구는 배급제를 하라는 뜻인데 그래보았자 영양가 있는 것이 제공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가격대비 고가치의 상품을 만들려는 노력과 연구를 부지런히 해야 할 시점이 지금이다. 전문가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는 이유이다.
둘째, 그와 관련해서 힘써야 할 일이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지나치게 외국 것을 수입하는 데 열을 올렸다. 외국인 연주자뿐아니라 오페라, 뮤지컬 등 대형 공연물도 서슴치 않고 들여온다. 심지어 외국에서 폐기처분하려는 오래된 프로덕션을 들여와 비싼 티켓값을 매겨 파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는 동안 우리나라 예술인들에겐 일자리가 적어지고 경쟁력도 키우지 못했다. 조금만 노력하면 우리나라 예술인의 잠재력을 빠른 시간에 개발할 수 있고 이미 그런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인프라와 시스템에 투자하지 않아 미개한 상태이다 보니 외국과 충분히 겨룰 수 있는 훌륭한 재능들이 묻혀지는 것이다. 지난해 연말 돌풍같은 연주로 우리를 놀라게 했던 베네수엘라 청소년 관현악단과 그들을 이끈 구스타보 두다멜은 모두 베네수엘라 정부의 지원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국위선양을 그에 투자한 금액과 비교할 수 있는가? 외국에서 한국을 빛냈다고 하는 예술인들은 모두 개인의 재력과 노력으로 그럴 수 있었다. 유명해지면 그제야 박수치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 국내에 있는 사람들을 발굴하고 이용해 외국으로 내보내는 일을 해야 한다.
셋째, 그로테스크한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 시민이 낸 세금은 우리 시민이 써야 한다”는 식의 바보천치 같은 소리가 여전히 어디선가 들려온다. 심지어 무대에 서는 사람까지 주민등록을 따져야 할 판이다. 그럴 것 없이 차라리 세금을 돌려주는 것이 어떨까? 그러면 각자 유용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한 도시의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도시를 개방하고 가능한 한 많은 외지인이 몰려오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공연문화가 특화해야 한다. 지도상에도 보이지 않은 미미한 도시가 세계로 튀는 일이 신기할 것도 없는 시대이다.
지난해의 당황함을 가라앉히고 위기에 정면으로 맞설 각오를 할 때 문화는 우리를 조금 더 성숙함으로 다가가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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