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론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산다. 가정의 행복도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나라의 행복 또한 저마다 가정의 행복을 위하는 마음이다.

저마다 추구하는 행복이 남의 행복 추구와 충돌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 생존경쟁이다. 그러나 이는 일찍이 개척시대를 경험한 서구인들의 서양사상이다. 특히 신대륙을 개척한 미국인들에게 이런 경향이 짙다. 이에 비해 동양사상은 나의 행복과 남의 행복의 관계를 충돌보다는 더불어 사는 생존화합의 관점으로 보아왔다. 한문의 사람인자 ‘人’은 사람이 서로 기댄 상형문자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저마다 사회기여의 활동 대가로 돈을 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인가를 궁리하는 것은 결코 공동악이 아닌 공동선이다. 인간의 생활은 소비고 소비는 곧 돈이다.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 좋은 일을 하려도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생활에서 돈은 절대적인 것이지만, 행복과 꼭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행복 순위가 돈 순위대로 기계화하면 인간의 삶이 무미건조할 것이다. 비록 돈은 적게 가졌어도 많은 돈을 가진 이 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 흥미진진한 것이 인간사다. 절대적인 돈이 행복과의 관계는 상대적인 게 삶의 오묘한 이치다.

행복은 멀리 보이는 허상의 신기루를 향해 쫓아가는 것이 아니다. 생활 주변에서 실질적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행복의 실체다. 예컨대 온 가족이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밤이면 집에 돌아오는 것도 큰 행복이다.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그 자체가 행복이다. 범사의 평안에서 행복을 느낄 줄 모르면 특별한 행복도 이루지 못한다. 신기루 같은 행복 추구는 허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면 불행해지고,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맹자는 ‘화복무불자기구자’(禍福無不自己求者)라고 했다. 화나 복이나 자기가 구하지 않는데 찾아오는 일은 없다는 뜻이다.

‘다모클레스의 검’은 인간의 행복을 말하는 이탈리아 고사다. 시라쿠라스 참주 디오니시오스가 왕의 행복을 부러워하는 신하 다모클레스를 왕좌에 앉히고 머리위에 말총으로 검을 늘어뜨려 영광속에도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을 일깨운데서 유래됐다.

한 평생 살면서 행복할 수 만은 없다. 슬플 때도 많고 분할 때도 많다. 곤경에 처할 때도 많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행복을 만들어가는 데 거쳐야 할 숙제다. 삶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같은 고독 또한 삶의 일부다.

행복의 뿌리는 존재하는 데 있다. 사람이 살아있는 것 자체가 행복인 것이다.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처했어도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능히 행복하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의 정의를 여러가지로 말했으나 ‘존재하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보는 정의 이상 가는 정답은 없다.

흔히 자살을 말한다. 죄악이다. 자신에 대한 살인이다. 자신을 살인한 주체, 즉 범인이 죽어 다만 처벌을 하지 못할 뿐, 살인으로 보는 것이 법철학의 해석이다.

또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은 대부분 죽고 싶진 않았던 것으로 밝혀진 사실이 자살 미수자들을 상대로 한 외국의 어느 설문조사에서 나왔다. 이 조사에 의하면 자살미수자 93%가 죽지 않고 산 것을 다행으로 안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죽고 싶진 않은데 기도하는 자살, 그것은 단순히 자살기도의 이유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도피심리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은 살고봐야 행복하고 행복은 객관적 가치보단 주관적 가치성이 더 높다. 가령 식사 때 국이 없으면 밥을 못먹고 국이 없어도 잘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밥을 국에다 말아 먹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비해 말아먹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식성 차이의 주관이 어느 게 좋다 안 좋다 하는 객관성을 띨 성격은 아닌 것과 같다.

실물경제가 위기에 빠져 어렵잖은 사람이 거의 없다. 정치인들이나 괜찮을까, 서민층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다. 가진 이들도 애먹는다. 예를 들어 빌딩 주인은 비싼 세금은 내면서 세든 가게마다 장사가 안 되어 문닫는 바람에 골탕먹는 수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살아야 한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어도 살아있는 걸 행복으로 알고 살아야 된다. 살아가야 언젠가는 지난 고생을 말 할 때가 또 온다. 지금은 고생도 삶의 한 부분으로 알고 참고 견뎌내야 할 때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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