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법안을 말한다

미디어 관련 법안의 100일 유예는 2월 국회가 낳은 유산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를 전제로 하여 파국을 막았지만, 그렇다고 민생 쟁점 법안이 제대로 처리된 것도 없다. 2월 국회는 결국 파행속에 임시회 회기를 마감했다.

미디어 법안의 속불이 재연된 것은 이른바 ‘사회적 논의기구’의 성격을 둔 양당의 장외 설전이다. 국회 문광위에 두게 되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한나라당은 자문기구로 규정하는 데 반해 민주당은 규제기구로 주장한다. 민주당 말대로라면 국회가 하는 일이란 거수기 노릇밖에 안 된다. “그럴려면 국회는 뭣하러 만들었느냐”는 것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말이다.

오는 6월에 임시국회를 다시 열어 미디어 관련 법안을 처리한다는 한나라·민주 양당 합의는 동상이몽이다. 한나라당은 그때 가선 민주당도 표결 참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는데 비해 민주당은 그때까지 반대 여론을 확산한다는 전략이다. 6월 표결 합의 또한 정작 이행은 의문이다. 민주당은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갖다붙일 구실은 많다. “약속한 사회적 논의가 미흡하다”고도 할 수 있다.

‘사회적 논의기구’는 구성단계부터 샅바 싸움이 치열할 것이다. 논의될 내용은 뻔하다. 찬성하는 쪽은 ‘미디어산업 육성을 위한 개혁’이라 할 것이고, 반대하는 쪽은 이명박 정부의 ‘언론통제를 위한 MB악법’이라고 목청을 높일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소리가 되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논의를 백날이 아니고 천날을 해봐야 양측의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집권차원의 개혁으로 보고, 민주당은 정치적 기반의 와해라고 보는 것이다. 2월 국회나 6월 국회나 똑같은 싸움이 벌어질 게 거의 분명하다.

미디어 관련 법안은 방송·신문·정보통신망 분야 등 22건이다. 논란 부분을 요약하면 대기업의 방송 진출 허용, 신문과 방송의 겸영 인정, 사이버 모욕죄 신설 등이다. 인터넷상의 명예훼손 처벌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유와 방종은 다르다. 책임이 수반되지 않는 자유는 방종이지 자유가 아니다. 얼굴을 감춘 익명성으로 남의 인격권을 무참하게 재단하는 허위사실 유포는 반사회적 범죄다.

조·중·동에 방송을 겸하게 하는 것은 메이저 신문의 언론독점이라고 힐난한다. 조선일보는 변화의 귀재다. 중앙일보는 재벌, 특히 삼성 편향적이다. 동아일보는 수구적이다. 지면에도 문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예컨대 얼마전에 말썽이 있었던 청와대의 강호순 홍보지침을 동아일보도 축소는 했지만 그런대로 보도하고, 조선·중앙은 노골적으로 축소 보도했다. 그러나 메이저 신문에 오른 것은 독자의 선택이다. 메이저의 대명사를 마치 죄악시하는 트집은 그를 선택한 절대 다수의 독자를 욕되게 하는 질시인 것이다.

이들 신문에 방송을 준다지만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일찍이 방송을 가졌었다. 다만 조선일보는 없었으나 동아일보는 동아방송(DBS), 중앙일보는 동양방송(TBC)이 있었다. 1963년에 개국된 DBS, 이듬해 개국한 TBC를 한국방송공사(KBS)에 강제로 합병시켰던 게 1980년 12월 전두환 군사정권이 자행한 언론사 통폐합에 의해서다.

대기업의 방송 허용은 부정·긍정의 양면성이 있긴 있다. 그러나 시청자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신문도 대기업의 의욕적인 진출이 있다면 굳이 부정할 일이 아니다. 요컨대 문제는 품질이다.

기존의 방송사들이 새로운 방송 허용을 반대하는 것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집단이익이다. “하긴, 방송도 새로 생겨야 한다”는 것은 어느 방송 종사자의 속내있는 말이다. 그에 의하면 KBS·MBC가 지상파 방송의 양대 분점을 이루다가 1990년 SBS가 생길 때 스카우트 바람이 불어 요동을 쳤다는 것이다. 이는 방송사가 또 생겨야 우수 인력의 재배치와 함께 방송계가 긴장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상파 방송이 더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경쟁을 두려워하는 밥그릇 지키기다.

미디어 관련 법안을 가리켜 이 정부가 방송 장악을 하려 한다지만, 방송도 그렇고 신문도 그렇고 정부에 장악당할 언론이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미디어 관련 법안을 보는 눈은 한 가지다. 정치권의 생각도, 기존의 방송들 생각도 다 아니다. 방송은 시청자, 신문은 독자의 입장에서 판단돼야 한다. 대한민국 전파는 지상파 3사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청자의 선택을 넓히는 데 반대하는 것은 어떤 말로든 이유가 안 된다.

미디어 관련 법안은 기실 민중의 민생과는 상관이 없다. 이럼에도 자신들의 이해관계로 국회 의사일정을 마비시켜가며 민생법안을 지연시키고 있다. 무서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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