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뒷이야기 예술가들 긴장 이렇게 푼다

박인건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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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들 앞에 나선다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몇 명의 사람들 앞에 서서 발표라도 할라치면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목소리가 떨리는데, 하물며 무대 위에서 관객을 맞는 예술가들은 수많은 관객 앞에서 실수 없이 기량을 선보여야 하는 부담감으로 더 많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 무대에 서는 일을 밥 먹듯 하는 음악가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오랜 시간 무대 활동을 해온 예술가들에게 직접 들어보니, 연주를 앞두고 신인은 물론 소위 대가라 불리는 유명 연주자들도 무대에 나서기 전에 긴장되고 초조하기는 마찬가지란다. 이 때문에 연주자들은 긴장을 풀기 위한 독특한 버릇을 자연히 갖게 되는데 필자가 공연에 관계하면서 보아 온 연주자들 중 기억에 남는 몇몇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예를 들어 ‘목련화’, ‘선구자’, ‘비목’ 등 우리 가곡을 너무도 아름답게 소화해 내기로 유명한 테너 엄정행 선생은 공연 직전 무대 뒤에서 왼손 엄지손가락과 둘째 손가락 사이를 때가 나올 정도로 박박 밀어야만 긴장이 풀린다고 한다.

또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이신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선생은 무대감독이나 스태프들에게 수다스럽게 이것저것 묻거나 혼자 중얼중얼하면서 무대로 나선다.

이와는 정반대로 피아니스트 이혜경 중앙대교수는 누가 옆에서 말을 붙이기가 힘들 정도로 새색시처럼 꼼짝하지 않은 채 눈을 꼭 감고 앉아 긴장을 푼다.

그런가하면 피아니스트 이경숙 연세대교수는 무대에 오르기 전 갑자기 악보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악보를 보고 또 보는 세심한 구석이 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김광군 경원대교수는 긴장을 푸는 방법으로 옆 사람에게 등을 두드려 달라고 한다. 그것도 보통 두드려서는 별 효과가 없다고 생각되는지 강도를 세게 해달라고 요구해 어떤 때는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그야말로 등뼈가 다 부서지는 소리가 나야만 비로소 무대로 뛰어 나간다. 옆에서 보는 사람은 재미있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무대 공포증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과 달리 부부가 함께 긴장을 푸는 경우도 있다. 오래전 어느 날 무대 뒤에서 갑자기 교회 부흥회를 연상케 하는 통성기도 소리가 울려 퍼져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근원지를 찾아가보니 첼리스트 K씨와 그의 부인이 무릎을 꿇고 “주여!”를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들의 모습이 워낙 심각해 보여서 조용히 빠져나왔지만 관객 앞에 서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은 어머니의 지극 정성으로 긴장풀기에 나선다. 리허설이 끝난 후 더운 물에 샤워를 해야만 긴장이 풀린다며 곱고 인자하신 모습의 어머니께서 필자에게 안내를 요청했다. 요즘은 시설이 잘 갖춰진 곳도 있지만 당시 분장실에 더운 물이 나올리는 만무했고, 지하식당에서 물을 데워 달라고 부탁해 물을 퍼 나르자는 제안까지 하셨다. 공연장 내에서 이는 사실상 불가능해 근처 목욕탕을 급히 알아봤고, 안내를 해드렸더니 굳이 그 내부를 봐야 맘이 놓이시겠다고 하신다. 목욕 중인 서너명의 아저씨들을 한 편으로 몰아세운 뒤 금녀구역인 그곳을 자상하신(?) 어머니가 두루 살펴보신 해프닝도 있었다.

이런 무대 뒷이야기들을 뒤로한 채 일단 무대에 서면 연주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열정적으로 연주에 심취한다. 그것만 봐도 확실히 그들만의 ‘끼’가 있다고 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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