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동아시아 통상전략 필요하다

정승연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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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신(新) 아시아 구상’을 발표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강대국에 치중됐던 4강 외교에서 벗어나 외교의 지평을 넓혀가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동 구상에는 미국, EU, 호주 등에 이어 앞으로 아시아 모든 나라와 FTA 체결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유럽이나 미주에 비해서 아시아는 경제발전 수준이 다른 무수히 많은 나라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아시아 모든 나라’와 FTA를 체결하겠다는 이 구상은 강력한 의지 표명은 평가할 수 있더라도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전략이 동반되지 않으면 한낱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시장으로서의 잠재력과 자원 확보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서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도 중요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중국과 일본, ASEAN이 포함된 동아시아임은 틀림없다. 특히 무역의존도가 극히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이 국가들과 FTA를 체결하여 동아시아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ASEAN+3(한중일)로 불리어지는 동아시아의 경제협력 필요성이 주창된 것은 1997년 이 지역에 닥친 경제위기가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 변화 속에서 출범한 김대중정부는 ASEAN+3라는 제도적 틀을 활용하면서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비전을 제시하였지만, 이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이라는 역내 양대 강국의 진지한 논의를 이끌어내기에는 역량이 미흡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어 등장한 노무현정부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구현을 주요 국정목표로 내세우며 한국이 동북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동 구상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정치논리에 근거하고 있었으며, 오늘날 역내 지역협력이 정치보다는 경제논리에 입각하여 전개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상과 같은 지난 정부에서의 아시아 전략을 교훈으로 삼는다면 이명박정부가 추진할 ‘신 아시아 구상’은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전략을 담지 않으면 안 된다. 세부적인 많은 전략이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이 중국ㆍ일본과 어떻게 통상협력을 강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세계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미국이라는 버팀목에 의존하며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일본은 서로를 견제하며 동아시아에서 끊임없이 주도권 쟁탈전을 벌여왔다. 2000년대 이후 중국은 ASEAN과 먼저 FTA를 체결하면서 ASEAN+3라는 틀 속에서 동아시아를 주도하려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은 ASEAN+3에다가 자국에 우호적인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포함시킨 동아시아 정상회의(EAS)를 탄생시켜 이를 토대로 동아시아공동체를 구축하려는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이러한 양대 강국 사이에서 한국의 입지가 넓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일 양국의 견제와 대립이 동아시아 경제협력에 있어 최대 걸림돌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국익 차원에서도 우리는 이 두 국가를 연결하여 역내 경제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러한 역할을 맡기 위해서는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외교통상적 노력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 동아시아 FTA 협력에 있어서 중국과 일본의 구상을 종합하여 중장기 플랜을 만들 필요가 있으며, 우선 이 두 나라와 FTA를 체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 둘 중 어느 나라와 먼저 FTA를 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동아시아 시장통합에 있다면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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