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선수

소녀는 일기장에 이렇게 호소했다. ‘꿈의 세계무대에 꼭 나가야 한다…. 태극기를 올려야 한다. 애국가를 울려퍼지게 해야 된다… 그런데 자꾸 다친다. 그렇지만 이 고비를 어떻게든 이겨내야 한다’ 이런 내용의 일기가 빽빽하다. 일기장엔 눈물자국이 얼룩지기도 했다.

세계무대의 피겨여왕 김연아(19·고려대)의 무명시절 일기다. 소녀는 무릎을 다쳐 치료하고 나면 발목을 다치고, 발목을 치료하고 나면 허리에 무리가 가는 등 부상이 끊일 겨를이 없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통증은 소녀를 무수히 괴롭혔지만, 소녀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서 열린 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우승한 김연아 선수의 영광 뒤엔 남다른 그 같은 의지와 노력의 피눈물이 고여 있다. 김연아 선수는 역대 여자 싱글사상 최초로 꿈의 200점을 돌파,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진정한 세계 피겨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어제 프리스케이팅에서 131.59점을 얻어 전날 쇼트프로그램 점수 76.12점을 합친 총점 207.71점으로 장식한 우승은 역대 최고 점수다.

단연 타선수의 추종을 불허했다. 뛰어난 점프력에 환상적인 연기, 유연하면서 순발력 넘치는 그의 경기는 대회장인 스테이플스센터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올해 군포 수리고를 나와 고려대에 진학, 소녀티를 갓 벗은 가녀린 그녀가 불모지였던 한국 피겨 스케이팅을 일약 세계 정상에 들어올렸다.

야구 대표팀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의 준우승 쾌거에 이어 김연아 선수가 전한 승전보는 국민을 행복하게 해 준 장거다.

또한 이 국민적 행복은 어린 소녀가 피눈물 나는 고통을 이겨내므로써 일궈낸 선물이다. 생각컨대 어른들은 지금의 경제위기 고통을 불평만 할 일이 아니다. 특히 정치권은 쌈닭노릇만 해서는 안 된다. 남다른 형극의 소녀시절을 보내면서 일기장에 스스로 다짐한 꿈을 이룬 김연아 선수의 이번 우승은 휴머니티의 인간승리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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