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執事)’의 사전적 풀이는 주인 옆에 있으면서 그 집 일을 맡아보는 사람이다. 높은 이에게 보내는 편지 겉봉의 택호(宅號) 밑에 ‘시하인(侍下人)’의 뜻으로 쓰는 말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론 고려 국초 때 주·부·군·현(州府郡縣)) 이직(吏職)의 하나로 사창(司倉)에 딸린 끝 벼슬이다. 또다른 뜻도 있지만 요즘은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청와대 집사’로 비유한다. 청와대 살림살이를 책임지기 때문이다. 청와대 집사는 그동안 주로 대통령 최측근들이 맡아왔다. 문제는 권력형 비리에 연루된 인사들이 많았던 사실이다.
김영삼 정권 당시 홍인걸 총무수석은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에게 10억원을 받은 혐의로 수감생활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을 전달한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도 충실한 집사였다. 정상문씨의 전임자였던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은 임명된 지 1년도 안 돼 당선축하금 22억원 등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정씨 역시 노 전 대통령의 국가가록물 유출 의혹 사건으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 있으며, 2004년 신성해운에 대한 세무조사 무마 로비 명목으로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었다.
원래 집사는 주인을 하늘처럼 섬겨야 한다. 주인의 얼굴빛, 눈빛만 보고도 심신의 이상 유무를 알아채야 한다. 그야말로 충복이 아니면 안 된다. 노 전 대통령이 ‘사과문’에서 “혹시 정 비서관이 자신이 한 일로 진술하지 않았는지 걱정”이라며 감쌌듯이 둘 사이는 오랜 친구다. 정씨는 노 전 대통령과 김해 불모산에 있는 장유암에서 사법고시 공부를 함께 했다. 사법고시에서 낙방한 정씨는 1978년 경남도 지방직 7급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고, 노 전 대통령은 서울시 4급 서기관이던 그를 3급으로 승진시킨 뒤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앉혔다.
정씨가 노 전 대통령을 떠받들지 않을 수 없는 인간적 관계다. 그러나 ‘권불오년(權不五年)’을 모른 ‘무지’와 하늘 높은 줄 모른 ‘방자’를 훈장처럼 달고 다녔다. 일개 ‘집사’가 ‘대감’이라면 혹 모르겠으나 ‘마님’에게까지 뇌물을 가져다 바친 것은 정말 역사에 남을만한 아부의 극치다.
사헌부의 논죄가 어떻게 떨어질 지 모르겠으나 다른 전·현직 청와대 집사들도 잠 못 이루는 밤이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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